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존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었고, 『범우고』에는 폐사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의 전화로 폐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묵(信默)이 이 절의 주지로 있을 때인 1556년(명종 11)유정(惟政)이 승려가 되기 위하여 이곳을 찾아왔다고 한다. 현존하는 유물로 보아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는 약 1,000여 평에 이르며, 폐허지에는 큰 초석들과 기와조각들이 산재하여 있다.
또, 지름 120㎝의 맷돌이 남아 있으며, 신라 말과 고려 초의 부도(浮屠) 1기 등이 있다. 현재 직지사(直指寺)에 있는 싸리나무 목조(木槽)는 원래 이 절에 있었던 것이라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옛 주춧돌을 이용하여 ㄱ자집으로 맞대어 세운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30여 년 전에 건립하여 영축사(靈竺寺)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