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료

  • 역사
  • 제도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직업군인들 가운데서 특수임무를 겸한 자들에게 본봉에 더해 주던 급료.
이칭
  • 이칭가료(加料), 겸료미(兼料米), 겸봉(兼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영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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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직업군인들 가운데서 특수임무를 겸한 자들에게 본봉에 더해 주던 급료.

내용

가료(加料)·겸봉(兼俸)·겸료미(兼料米)라고도 하였다. 겸료의 대표적인 것은 훈련도감군사들 중에서 겸사복(兼司僕 : 근위대인 금군의 하나)을 겸한 자들에게 준 가료이다.

훈련도감 소속의 직업군인들에게 매월 주는 급료는 기병(騎兵)이 쌀 10말, 콩 9말, 보병이 쌀 9말이었는데, 이들 가운데 겸사복에 선임된 자들에게는 매월 쌀 1말, 좁쌀 2말을 더해 주었다. 또 자기 말을 가진 자와 각 초(哨)의 색서자지[色書字的]들에게는 겸사복이 아니라도 겸료를 주었다.

당초에는 겸료와 본봉이 다 호조에서 지급되었으나, 1758년(영조 34)에 홍봉한(洪鳳漢)·이성중(李成中) 등의 건의로 겸료는 훈련도감 자체에서 관장을 하게 하였다. 이 때 겸사복의 정원은 4,370인으로, 그들에게 지급할 겸료를 모두 쌀로 환산하여 매년 3,870여 석의 쌀을 호조에서 훈련도감으로 넘겨주게 하였다.

이 밖에 금위영·어영청의 패두(牌頭)·서자지·세악수(細樂手)·아기수(兒旗手)·청사군(請伺軍)·별파진(別破陣)·겸사복 등에게도 쌀 3∼6말, 때로는 무명 1필씩을 더 주기도 하였다.

겸료는 특수정예부대요원 및 특별기능보유자들에 대한 가산급료로 지급되었고, 그에 따라 부단한 훈련과 전투력 측정이 있었다. 훈련이나 시험에 불참하거나 성적이 부진한 자는 겸사복에서 제외되었고 겸료도 지급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 - 『만기요람(萬機要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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