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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15일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창간된 국내 최초의 지방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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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09년 10월 15일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창간된 국내 최초의 지방 신문.
내용

이 신문의 발간준비는 이미 그해 2월 이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주도적인 인물은 김홍조(金弘祚)·김영진(金榮鎭)·김기태(金琪邰)였다. 또한, 경상남도관찰사 황철(黃鐵)도 신문의 창간을 지원하였다.

주필에는 황성신문(皇城新聞)의 사장이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해조신문(海朝新聞)의 주필을 역임하였던 장지연(張志淵)이 초빙되었다. 초대 사장은 김홍조였고, 2대는 강위수(姜渭秀, 姜筌)였다.

신문사 설립과 이의 운영자금은 경상남도 유지들이 참여하여 주식회사체로 출발하였는데, 이 신문에 간여한 사람들은 주로 하급 관리를 역임한 유생들이었지만 지주와 상공업자도 있었다. 그러나 창간 초부터 재정난을 겪었다. 처음에는 일간 발행이 목표였는데 격일간으로 발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이 경영하는 국내 유일의 지방신문으로 한일합방 이후 서울에서 발행된 신문은 모두 폐간된 뒤에도 한동안은 계속 발행되었다. 합방직후인 1910년 10월 11일자에는 황현(黃玹)의 「절명시(絶命詩)」를 주필 장지연의 평과 함께 게재하여 정간 당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장지연은 1913년 8월 30일자로 사직하였고 신문은 1914년 말 또는 이듬해 초까지 발행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신문의 내용은 국민 생활에 필요한 중앙과 지방의 소식을 비롯하여 주로 실업장려와 민지(民智)개발에 중점을 두었으나 당시의 정치 문제는 깊이 다루지 않았다. 1910년 11월부터는 신문사 부설 야학교를 설치하였는데 주필 장지연이 한문 교사직을 맡았다.

참고문헌

「진주의 경남일보-유일의 지방지-」(최기영, 『대한제국시기신문연구』, 일조각,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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