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어찰첩 ( )

고전산문
문헌
국가유산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
이칭
이칭
정조신한첩(正祖宸翰帖)
문헌/문서
발급자
정조(正祖)
수급자
심환지(沈煥之)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관련 인물
정조(正祖)|심환지(沈煥之)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정조 어찰첩(正祖 御札帖)
분류
기록유산/서간류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2016년 11월 1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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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정조 어찰첩』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이다. 1796년(정조 20) 8월 20일부터 1800년(정조 24) 6월 16일까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었다. 6첩, 필사본.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정의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 297편을 엮은 서첩.
제작 및 발급 경위

정조가 재위 말년에 해당하는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6일까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어찰(御札) 297편을 엮은 책이다. 수신자는 삼청동문(三淸洞門), 단규(端揆)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삼청동에 거주한 우의정 심환지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누설을 염려한 탓에 어찰을 받는 즉시 없애라고 누차 언급하였으나, 심환지는 수신일자까지 부기하여 빠짐없이 보관하였다. 이로 인해 어찰을 주고받은 시기를 알 수 있어 어찰의 맥락 파악이 가능하다.

형태와 내용

크기는 가로 35.5㎝, 세로 47.5㎝이다. 편지에 사용된 종이는 여러 종류로 고급 간지(簡紙), 태지(苔紙), 심지어 저급의 용지로 취급되는 피지(皮紙)가 두루 사용되었다. 6첩, 필사본. 어찰은 총 297편으로 글자 수는 5만 2천여 자이다

누설을 염려한 탓에 축약이 심하고, 발신자와 수신자가 정황을 공유한다는 전제하에 씌어져 일반적인 서간문의 격식으로는 해독하기 어렵다. 이두와 구어체, 속담 및 속어도 자주 보이며 심지어 한글을 그대로 사용한 부분도 있다. 주된 내용은 당대의 정치적 사안이지만, 정조의 사생활과 인간적인 면모도 엿보인다.

의의 및 평가

정조의 친필 어찰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일본 야마구치[山口]현립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합산하면 1천여 통이 넘는다. 정조는 심환지 외에도 여러 신료 및 친지들과 어찰을 주고받았다.

정조의 어찰은 공식적인 사료의 이면에 숨겨진 사건의 내막과 정조의 의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특히 심환지에게 보낸 어찰을 엮은 이 책은 그간 대립적인 관계로 알려진 정조와 노론 벽파의 정치적 역학 관계를 재고할 필요를 제기한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백승호 외 공역, 『정조어찰첩』(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9)
박철상 외 공저, 『정조의 비밀 어찰, 정조가 그의 시대를 말하다』(푸른역사, 2011)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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