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기존에 간행된 바 있는 시문집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기적으로는 고대로부터 당대까지의 시를 모았으며, 작자 또한 종친, 여성, 승려, 귀화인 등 다양한 인물들의 작품을 집대성하였다. 체계의 구성에 있어서도 시대, 신분, 작자의 생몰년(生沒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편찬하였다.
12권 3책. 병자자본(丙子字本). 본디 7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명대본은 권9~11과 권31~39만 남아 있고, 아단문고[현 현담문고]에 2권 1책[권47~48], 충남대학교 도서관에 5권 2책[권13~14, 63~65]이 소장되어 있다. 전모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조선 초기에 편찬된 시선집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본 유물은 『신편유취대동시림』 총 70권 중에서 권9~11과 권31~39에 해당한다. 이 판본은 1542년경에 금속활자인 병자자로 간행하였다. 병자자는 1516년(종종 11) 주자도감(鑄字都監)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간행할 때 새로 주조한 것으로, 이 책은 병자자로 인출한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의 내용이 1478년(성종 9) 간행된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시나 각 작가들의 문집에 수록된 원문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16세기 우리나라 시문집 간행의 과정을 살펴보는 데 중요한 서책으로 판단된다.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이 책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첫째, 김시습(金時習)을 승려로 분류한 점, 둘째, 어무적(魚無迹)의 시는 신분을 문제 삼아 수록하지 않은 반면, 부친 유인귀(柳仁貴)의 시를 다수 수록한 점, 셋째, 사신으로 온 일본 승려들의 시를 수록한 점, 넷째, 여성의 시는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 수록한 점, 다섯째, 이규보(李奎報)와 박은(朴誾)의 장편시를 수록하지 않은 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이 책의 자료적 가치는 일찍부터 인정을 받았다. 허균은 『학산초담』에서 역대 조선 국왕의 시를 이 책에서 대략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열성어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조선 초기 국왕들의 시는 이 책에서 선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