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패림(稗林)』 제6집에 수록되어 있다. 허균의 후기에 의하면, 『학산초담』은 그가 임진왜란을 피하여 강릉에 머무르던 25세 때(1593)에 쓴 시(詩) 비평집이다. 허균이 청년기 시절에 활달하고 날카로운 시야로 당시의 시인들에 대한 생각과 작품을 분석한 평론서이다. 『성수시화(惺叟詩話)』와 함께 우리 국문학사상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문학평론서이다.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는 실려 있지 않고, 별책으로 『패림』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조윤제(趙潤濟) 소장의 『패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학계에 관심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학산초담』의 내용은 시화 · 시평이 99칙(則), 기타 9칙, 합하여 108칙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제왕문장(帝王文章)에 관하여 언급하고, 조선시학의 흐름을 개관하면서 최경창(崔慶昌) · 백광훈(白光勳) · 이달(李達) 등 이른바 삼당시인(三唐詩人)을 중점적으로 거론하였다. 중간에 당시 유명시인들의 시를 언급하면서 중국시학의 흐름에 대하여서도 조금 언급하였다. 그밖에 기녀의 시 또는 서얼의 시 등도 평하고 있다.
『학산초담』은 주로 학당파(學唐派) 시인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즉, 삼당시인이 18칙, 허봉(許篈)이 25칙, 허난설헌(許蘭雪軒)이 6칙, 소(蘇齋) · 호(湖陰) · 지(芝川)가 5칙, 그밖에 이주(李胄) · 김정(金淨) 등과 백대붕(白大鵬)에 이르는 당시풍(唐詩風) 추종자들의 시에 대한 평론이 다수 등장한다.
허균은 문장이란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수준이 낮아진다고 생각하였다. 전인들의 시구를 모방하였을 때에 고도의 기술을 쓴다면 평가할만한 작품으로 남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시작품의 우열에 대한 판단은 중국시의 최고봉인 당시에 비교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작자는 송시나 명시를 상당히 낮게 평가하고 있다. 또 당시 중에서도 만당(晩唐)의 풍을 본받는 것을 비판하고, 성당(盛唐)의 시풍을 최고의 전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선시학의 흐름도 당연히 송시풍에서 당시풍으로의 전환에 주목하여 서술하고 있다.
허균은 당시를 익혀서 확산하고 보급한 정사룡(鄭士龍) · 노수신(盧守愼) · 황정욱(黃庭彧) 등을 호 · 소 · 지라 하여 칭찬하였다. 이어서 삼당시인을 본격적으로 당시풍에 접근한 인물들로 인정하고 그들의 시를 높이 평가하였다. 특히, 그의 스승인 이달에 대한 칭찬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허균은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는 음절이나 격률이 전인들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그 시가 포함하고 있는 시정신이 빠져 있다면 올바른 환골탈태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시에 있어서 수사적인 표현기교와 함께 시에 내재하는 시정신을 중시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허균의 『성수시화』가 시간적이고 종적인 구성을 하고 있는 반면에 『학산초담』은 공간적이고 횡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중국의 것까지 거론하여 보다 국제성을 띠고 있고, 청년기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력이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