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적 ()

한문학
인물
조선시대 「유민탄」, 「신력탄」 등을 저술한 시인.
이칭
잠부(潛夫)
낭선(浪仙)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함종(咸從, 지금의 평안남도 강서군)
정의
조선시대 「유민탄」, 「신력탄」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본관은 함종(咸從: 평안남도 강서군). 자는 잠부(潛夫), 호는 낭선(浪仙)이다.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어변문(魚變文)이며, 아버지는 사직(司直) 어효량(魚孝良)이다. 성종·연산군 때에 벼슬이 높았던 어세겸(魚世謙)과 어세공(魚世恭)과는 재종형제(再從兄弟) 사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머니가 관비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교양을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힐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절간을 지나면서 “청산도 손님 오자 예절을 차려, 머리에 흰 구름의 갓을 썼도다.[靑山敬客至 頭戴白雲冠]”라는 시를 지을 정도로 뛰어난 시재(詩才)가 있었다. 시(詩)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신분제도 때문에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고 불우하게 살았다.

할아버지 때 김해로 내려갔으며 아버지는 사대부였으나 어머니가 관비(官婢)여서 법에 규정된 바에 따라 관노(官奴)가 됐다. 어떤 방법을 취해서 천한 신분을 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얼(庶孽)에게 주어지는 보잘것없는 직책인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라는 말직에 나간 적이 있다.

1501년(연산군 7)에 김해(金海)에서 백성이 겪던 어려운 사정을 낱낱이 밝힌 장문의 상소(上疏)를 올렸으나 무시됐다. 향락의 근절, 민생의 보호, 군주다운 자세 확립, 선비의 각성 및 언로(言路)의 창달을 간절히 소망하는 글이었다. 이 신유상소(辛酉上疏)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7년 신유 7월 을해조(乙亥條)에 기록되어 있다. 선조 임금은 “어무적(魚無迹)의 시에 ‘궁궐에선 백성 걱정해 조서를 늘 내리는데, 주현(州縣)에서 한낱 그저 종이로만 전해 받네.[北闕每下憂民詔 州縣傳看一虛紙]’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폐습이 그러하다. 드러나는 대로 죄를 주어 사정(私情)으로 요행히 면제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한편, 어무적이 살던 고을에서 매화나무에까지 무리한 세금을 부과하자, 어느 백성이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는 「작매부(斫梅賦)」라는 시를 지어 관리의 횡포를 규탄했다. 이에 담당 관리가 잡아 벌을 주려 했으나 도망쳤으며, 유랑 중에 어떤 역사(驛舍)에서 죽었다.

신분이 미미해 생애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당시에 문학적 재능은 높이 평가 받았다. 『속동문선(續東文選)』과 『국조시산(國朝詩刪)』에 그의 시가 실려 있다. 특히, 유랑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대변한 「유민탄(流民嘆)」과 「신력탄(新曆嘆)」과 같은 작품은 유명하다.

참고문헌

『속동문선(續東文選)』
『국조시산(國朝詩刪)』
『청강시화(淸江詩話)』
『수문쇄록(謏聞鎖錄)』
『패관잡기(稗官雜記)』
「어무적의 시와 홍길동전」(임형택, 『한국한문학연구』3·4 합집,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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