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 교정을 역임한 승려.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0년 서울에서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포교당의 교화사업에 힘을 기울였고, 1911년 조선불교임제종운동(朝鮮佛敎臨濟宗運動)이 일어났을 때 임시 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朝鮮佛敎禪敎兩宗敎務院)이 창립되었을 때 최고직인 교정(敎正)에 추대되었다.
또한, 그는 근대의 대표적인 사경승으로, 1880년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發願)으로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서사(書寫)하였다. 이때 쓴 『금자법화경』 한질은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필적이 매우 뛰어남을 볼 수 있다.
1896년부터는 선암사에서 『화엄경』의 사경을 시작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화엄경』의 일행 일자를 끝낼 때마다 일배(一拜)를 하면서 서사하였다. 평생 동안 후학을 길러내고 불사를 행하다가 선암사에서 85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참고문헌
- 『선맥(禪脈)』(서경보, 아카데미, 1978)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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