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講伯)·사경사(寫經師). 성은 김씨(金氏). 경운은 법명이다. 경상남도 웅천(熊川)에서 태어나 17세에 출가하여, 구례군연곡사(鷰谷寺)환월(幻月)의 제자가 되었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仙巖寺)의 대승강원(大乘講院)에서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뒤에는 직접 강의를 담당하여 선암사를 당대 강학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순천의 환산정(喚山亭)을 매입하여 새로운 포교당을 설립하고 포교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910년 서울에서 중앙포교당이 설립되자 포교당의 교화사업에 힘을 기울였고, 1911년 조선불교임제종운동(朝鮮佛敎臨濟宗運動)이 일어났을 때 임시 관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17년 조선불교선교양종교무원(朝鮮佛敎禪敎兩宗敎務院)이 창립되었을 때 최고직인 교정(敎正)에 추대되었다.
또한, 그는 근대의 대표적인 사경승으로, 1880년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發願)으로 『금자법화경(金字法華經)』을 서사(書寫)하였다. 이때 쓴 『금자법화경』 한질은 양산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필적이 매우 뛰어남을 볼 수 있다.
1896년부터는 선암사에서 『화엄경』의 사경을 시작하여 6년 만에 완성하였는데, 『화엄경』의 일행 일자를 끝낼 때마다 일배(一拜)를 하면서 서사하였다. 평생 동안 후학을 길러내고 불사를 행하다가 선암사에서 85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