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때, 태조의 왕사를 역임한 승려.
내용
888년(진성여왕 1) 조공사(朝貢使)를 따라 당나라에 건너가 도응(道膺)으로부터 법요(法要)를 배워 그의 법인(法印)을 전해받았다. 당시 중국에서는 그와 형미(逈微) · 여엄(麗嚴) · 이엄(利嚴)을 해동의 사무외대사(四無畏大師)라 칭하였다고 한다.
908년(효공왕 11)에 귀국하였으며, 고려가 개국한 뒤 태조의 왕사가 되었다. 일월사(日月寺) 법당에서 입적하였는데, 944년(혜종 1) 경기도 개풍군(현재 개성) 오룡사(五龍寺)에 비가 세워졌다. 시호는 법경(法鏡), 탑호는 보조혜광(普照慧光)이다.
참고문헌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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