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제22대 지증왕의 증손 김후직의 무덤. 원형봉토분.
내용
뒤에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김후직이 세 아들에게 말하기를, 신하된 몸으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으니 죽더라도 반드시 왕을 깨우쳐 주리라 하고 시신을 왕의 사냥길 옆에 묻어주도록 유언하니 아들이 그렇게 하였다.
어느날 진평왕이 사냥을 나갈 때 길가에서 “가지 마시오”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으므로 시종하는 사람에게 물으니 김후직의 묘에서 나는 소리라 하고 죽을 때 김후직이 한 말을 전하였다. 이에 진평왕은 크게 뉘우치고 다시는 사냥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김후직이 죽어 묘에서까지 임금에게 바른 말로 간(諫)하였으므로 이를 ‘묘간(墓諫)’이라 하고, 그의 묘를 ‘간묘(諫墓)’라 하였다. 이 무덤은 지금의 경주시 황성동 국도변에 있는데, 외형은 일반적인 원형봉토분과 크게 다를바 없다. 묘 앞의 상석은 후대에 만든 것이다.
조선 숙종 36년(1710)에 이르러 이 무덤에 묘비(墓碑)를 세워 김후직의 충절을 기렸다. 비문은 경주부윤 남지훈(南至薰)이 지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경주시지(慶州市誌)』(류석우 편, 1971)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하(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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