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운이 없는 사람은 모처럼의 기회를 얻어도 뜻밖의 상황으로 일이 잘 되지 않음을 가리키는 속담 설화이다. 『송남잡지』에 어렵게 얻은 계란도 곯아서 먹을 수 없었던 황희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이를 계란에 뼈가 있다는 ‘계란유골(鷄卵有骨)’로 표현하고 있다. 또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에서는 '골'을 뼈가 아니라 '곯았다'로 해석하고 있다. 어떻게 해석을 하든 먹을 수 없게 된 계란이라는 뜻은 동일하다. 운이 없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잘 되지 않음을 전달한다.
뼈가 있을 리 없는 계란에 뼈가 있어 먹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로, 운이 없는 사람을 주위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다른 이유로 잘 되지 않을 때 주로 사용한다. 『송남잡지』에는 ‘계란유골(鷄卵有骨)’이라 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황희(黃喜)가 비록 지위가 높아 재상의 자리에는 있으나 먹을 것이 없어 턱이 툭 튀어나올 형편이었다. 임금이 이런 그를 딱하게 여겨 도와주고자 분부하기를, 하룻밤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재물을 그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런데 마침 그 날 큰비가 내려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이 없더니 저녁에서야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왔다. 이것을 받은 황희 정승이 삶아 먹으려고 보니, 계란이 모두 곯은 것이었다.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도 ‘계란개골(鷄卵皆骨)’이라 하여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강일용(康日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고려왕(高麗王)이 그를 도와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어느 날 하룻밤 동안 도성(都城)의 사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재물을 모두 그에게 주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그 날 마침 비가 내려 사대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재물이 없더니, 나중에야 어떤 사람이 계란 몇 꾸러미를 가지고 들어 왔다. 이것을 받은 강일용이 집에 돌아와 삶아 먹으려니까 이것마저 곯았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이 이 일로 인하여, 복이 없는 자를 강일용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 속담과 관련된 황희의 이야기는 구전설화로도 전해 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희는 살림이 곤궁하나 재주가 무궁무진했다. 하루는 부인이 “그렇게 재주가 많은 양반이 왜 굶고 사느냐?”고 따져 물었다. 황희는 “그렇게 먹는 것이 원이면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하며 부적을 써서 사방으로 던졌다. 그러자 오곡이 들어와서 마당에 쌓였다. 부인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곳간으로 퍼 들이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곡식을 날려보내고 말았다. 부인이 통곡을 하며 원망하자 황희는 다시 부적을 써서 계란 열 개를 들어오게 하였다. 부인이 다시 없어지기 전에 얼른 먹으려고 삶아 껍질을 까자 그 속은 이미 병아리가 되려다가 죽은 것으로 모두 새까맣게 되어 있었다. 황희는 “그것 보라.”며, “당신이나 나나 안 되는 사람은 계란에도 유골이라.” 하였다. 병아리가 되려다 만 계란이라 속에 뼈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송남잡지』에는 “골(骨)은 방언으로 못쓰게 되었다는 뜻이니 즉 곯았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고, 『태평한화골계전』에도 ‘계란이 곯았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 ‘골(骨)’을 ‘뼈’가 아닌 ‘곯았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후에 와전된 속담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먹을 수 없게 된 계란이라는 뜻은 같으며, ‘계란이 곯았다’는 것보다는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표현을 통해서, 운이 없는 사람은 하다못해 계란을 얻어도 뼈가 들어 먹을 수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