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인사, 은해사 등에서 강사로 후학을 지도한 승려.
개설
생애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서 스승과 함께 만일결사도량(萬日結社道場)을 열어 정진하였고, 다시 양산내원사(內院寺)로 옮겨 4년을 정진하였다. 1930년부터는 금강산유점사(楡岾寺)·마하연(摩訶衍), 함경도 석왕사(釋王寺) 등 유명한 선원들을 찾아 한 철씩 수도하였다.
특히 석왕사 선원에서는 ‘이 뭣고[是甚?]’ 화두를 들고 일념으로 정진하다가 도를 깨닫고 “산 아래 다리를 펴고 누워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의 한 곡조로 태평가를 부른다.”는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그 뒤 해인사(海印寺)로 가서 대장경을 열람하고 통도사(通度寺) 전문강원에서 공부하였다. 1943년 해인사 강사로 취임하였고, 은해사(銀海寺) 강사로 초빙되어 그곳에서 일념으로 후학들을 양성하였다.
그 후 만공(滿空)과 더불어 법거래(法去來)를 하기도 하였고, 술과 여자까지도 물리치지 않는 이행(異行)을 즐겨 하였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서도 술에 취하는 법이 없었고 여자를 택하면서도 여자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일체의 형식을 초월해서 살았다.
그 뒤 해인사에서 오랫동안 강사생활을 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김천청암사(靑巖寺)로 옮겨 불경을 가르쳤다. 주위에서는 그를 ‘주고봉(酒高峰)’이라 불렀으나, 언제나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경을 연구하고 선정에 들었으며, 학인들을 가르칠 때는 그 엄격함이 대단하였다. 1967년 『화엄경』을 보면서 앉아서 입적하였다. 제자로는 우룡(雨龍)·고산(杲山) 등이 있다.
참고문헌
- 『무상(無常) 속에 영원(永遠)을 산 사람들』(김정휴, 홍법원,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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