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함창현감, 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활약하다가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생활을 하던 중에 「농가월령가」를 저술했다고 추정되는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49세인 1601년(선조 34) 이후지례현감 · 함양군수를 지냈고, 이덕형(李德馨) · 이순신(李舜臣) 등과의 서사 기록(書事記錄)도 남긴 바 있다. 그 뒤 울산판관을 지낸 후,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 생활을 하였다.
문집으로 1898년(고종 15)에 간행한 목판본 6권 3책이 전한다. 그 가운데 행장(行狀)에 보면 농사에 밝고 문장이 능하며, 농군을 가르치고 농사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하여 학계에서는 현전하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그의 작품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는 문집인 『태촌집(泰村集)』에 「농가월령」이라는 기록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이후 농경 생활을 했다는 내용이 문집의 행장에 기록되어있어, 「농가월령가」는 고상안과 관련이 깊으리라는 짐작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 밖에 그의 문집에는 총화(叢話) · 여화(餘話)에 해당되는 「효빈잡기(効嬪雜記)」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에게 올린 팔책(八策)과 유합(類合), 『해동운부군옥(海東韻府群玉)』에 대한 기록과 풍속 · 전설에 관한 기록 등이 전해지고 있어 일반 문집에 비해 이색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점을 종합하여 볼 때, 「농가월령가」의 나타난 계절 감각, 영농 내용 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까닭에, 학계에서는 그가 「농가월령가」의 작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문집으로 『태촌집』이 있다.
참고문헌
- 「농가월령가해제」(박성의, 『한국고전문학대계』7, 민중서관, 1974)
- 「농가월령고」(홍재휴, 『동양문화』6·7합병호, 영남대학교, 1968)
- 「태촌집독태촌집후」(방종현, 『한글』101, 194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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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태촌선생문집(泰村先生文集)』 권6, 행장(行狀)(국립중앙도서관[古364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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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사 급제 : 『만력1년계유2월24일사마방목(萬曆元年癸酉二月二十四日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한貴古朝26-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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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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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상안 저술 : 『태촌선생문집(泰村先生文集)』 권6, 행장(行狀)(국립중앙도서관[古364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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