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7월 23일과 27일에 각각 쓴 2수의 재사가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최치원이 당나라 고변(高騈)의 종사관으로 서기의 책임을 맡아 있으면서 고변을 대신해서 쓴 것이다.
고변의 종손자인 소의는 당시 계속되고 있던 황소(黃巢)의 난을 진압하려다 전사한 인물로 추정되는데, 소의가 죽자 화이난[淮南]의 법운사(法雲寺)에 승려 300명을 초청하여 재를 설하고, 『금광명경(金光明經)』 5부와 『법화경』 1부를 사경(寫經)하여 명복을 빌었다.
최치원이 26세에 쓴 이 재사에는 소의의 활동과 그를 잃은 슬픔 및 그의 명복을 비는 간절한 기원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