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4년(명종 4)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난을 일으키자 낭장으로 연주인(延州人) 현덕수(玄德秀)를 도와 연주성을 지켰으며, 그뒤 1193년 제2차 동경민란 때 대장군으로 도지병마사(都知兵馬使)가 되어 김사미(金沙彌) · 효심(孝心)의 무리를 토벌하게 되었다.
그때 상장군 최인(崔仁)이 직무수행을 게을리하여 반란을 속히 진압하지 못한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어 대신 남로착적병마사(南路捉賊兵馬使)가 되어 효심을 사로잡아 난을 진압, 그 공으로 공부상서에 제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