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1년(우왕 7) 밀직부사로 강릉도(江陵道)에 침입한 왜구를 토벌하고 다시 울진현에서 왜구를 맞아 싸워 20여 명을 베고 말 70필을 얻는 전과를 올렸다.
1년 뒤 강릉도부원수로서 상원수 조인벽(趙仁璧)을 도와 왜구 30여 명을 베었고, 또한 동산현(洞山縣)에서 왜구를 물리치는 등 왜구토벌에 공을 세워 왕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
1386년 판덕창부사(判德昌府事)로 사망하였는데, 평소 힘이 세어 대항할 자가 없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10,000인을 대적할 사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이라 일컬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