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곡성향교는 현감이 파견된 1413년(태종 13) 무렵에 창건되었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곡성읍지』에 현 서쪽 4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현재도 읍내 서쪽 3㎞ 떨어진 성출봉 기슭에 있다. 창건 후 지금까지 이건되지 않고 한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유재란의 여파로 곡성현은 1597년(선조 30) 남원부에 합속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 복현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향교 기능이 정지되었을 것 같다. 한국전쟁 때 공비들의 습격으로 일부 소실된 바 있다.
변천
1537년(중종 32) 생원 · 진사들의 강학소인 사마재(司馬齋)가 향교 동쪽에 창건되었고, 양사재(養士齋)가 1791년(정조 15) 향교 서쪽에 건립되었다. 사마재와 양사재는 현재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향교 교육을 위한 재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823년(순조 23) 현감이 돈 3백냥을 내어 섬학전(贍學錢)을 마련하고, 향유들은 전답 35두락을 매입하였다. 1921년에는 유림들이 존성계(尊聖契)를 조직하였다. 1984년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참고문헌
단행본
- 『전남의 향교』(전라남도, 1987)
- 『곡성향교지』(1958)
논문
- 윤희면, 「조선시대 전라도 사마안 연구(2): 곡성 사마안 사례」(『역사학연구』 70, 호남사학회, 2018)
- 김덕진, 「전라도 곡성현 향안 연구」(『역사학연구』 60, 호남사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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