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향교 ()

곡성향교 전경
곡성향교 전경
유적
국가유산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
유적
건립 시기
조선 전기
소재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교촌리 190번지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곡성향교(谷城鄕校)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1984년 02월 29일 지정)
소재지
전남 곡성군 곡성읍 교촌리 190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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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곡성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정유재란의 피해 여파로 곡성현이 남원부에 합속된 기간 향교 기능이 정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한국전쟁 때 향교가 소실된 적이 있다. 사마재와 양사재가 건립되었고, 수령·향유에 의해 교육 진흥을 위한 섬학전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정의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곡성군에 세워진 향교.
건립 경위

곡성향교는 현감이 파견된 1413년(태종 13) 무렵에 창건되었을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곡성읍지』에 현 서쪽 4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현재도 읍내 서쪽 3㎞ 떨어진 성출봉 기슭에 있다. 창건 후 지금까지 이건되지 않고 한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정유재란의 여파로 곡성현은 1597년(선조 30) 남원부에 합속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 복현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향교 기능이 정지되었을 것 같다. 한국전쟁 때 공비들의 습격으로 일부 소실된 바 있다.

변천

1537년(중종 32) 생원 · 진사들의 강학소인 사마재(司馬齋)가 향교 동쪽에 창건되었고, 양사재(養士齋)가 1791년(정조 15) 향교 서쪽에 건립되었다. 사마재와 양사재는 현재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향교 교육을 위한 재정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823년(순조 23) 현감이 돈 3백냥을 내어 섬학전(贍學錢)을 마련하고, 향유들은 전답 35두락을 매입하였다. 1921년에는 유림들이 존성계(尊聖契)를 조직하였다.

1984년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현존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전사청, 동재, 서재, 교직사, 고사,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과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2층 누문 형태로 되어 있다.

향사당에 있던 향안(鄕案)은 향사당 혁파 후, 1906년 향교로 옮겨졌다. 명륜당 벽장에 보관 중이었는데, 1923년 『욕천속지』와 1958년 『곡성향교지』에 인쇄되어 수록되었다. 그런데 중간에 일부가 유실되어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전남의 향교』(전라남도, 1987)
『곡성향교지』(1958)

논문

윤희면, 「조선시대 전라도 사마안 연구(2): 곡성 사마안 사례」(『역사학연구』 70, 호남사학회, 2018)
김덕진, 「전라도 곡성현 향안 연구」(『역사학연구』 60, 호남사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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