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십절목은 선종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설정한 수행의 열 가지 단계이다.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공부라는 말은 수행이라는 뜻으로 선수행의 열 가지 단계라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공부십절목’이라는 용어로서 나옹 혜근의 어록에 제시된 가르침이다. 전자의 의미로는 보조 지눌이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주1하는 데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제시한 가르침이다. 지눌의 공부십절목은 일찍이 대혜 종고(大慧宗杲)가 제시한 무자화두의 참구에서 주의할 사항을 근거로 해서 지눌이 설정한 열 개의 항목을 가리킨다. 선수행에서 마음을 어떻게 지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차근차근 접근하는 방법으로 견성(見性)에 이르는 단계를 설정하였다. 송대의 보명(普明)은 「목우도(牧牛圖)」에서 미목(未牧), 초조(初調), 수제(受制), 회수(廻首), 순복(馴伏), 무애(無礙), 주운(住運), 상망(相忘), 독조(獨照), 쌍민(雙泯)을 제시하였다.
곽암(廓庵)은 「십우도(十牛圖)」에서 심우(尋牛), 견적(見跡), 견우(見牛), 득우(得牛), 목우(牧牛), 기우귀가(騎牛歸家), 망우존인(忘牛存人), 인우구망(人牛俱忘), 반본환원(返本還源), 입전수수(入廛垂手)를 제시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보조 지눌(普照 知訥, 11581210)이 『진심직설』에서 번뇌를 그치고 무심(無心)의 경지로 나아가는 수행방법으로 다음의 열 가지 단계를 제시하였다. ①각찰(覺察)은 번뇌가 일어나면 그것이 번뇌인 줄 알아차리는 것이다. ②휴헐(休歇)은 알아차린 번뇌를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③민심존경(泯心存境)은 번뇌의 근원이 되는 주관의 마음은 그쳤지만 객관의 대상은 남아 있는 경지이다. ④민경존심(泯境存心)은 객관의 대상이 소멸되고 주관의 마음만 남아 있는 경지이다. ⑤민심민경(泯心泯境)은 주관의 마음과 객관의 대상이 모두 사라지는 경지이다. ⑥존심존경(存心存境)은 주관의 마음과 객관의 대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도 마음과 대상에 집착이 없는 경지이다. ⑦내외전체(內外全體)는 주관과 객관이 구별이 없어 물아일체가 되는 경지이다. ⑧내외전용(內外全用)은 마음과 대상이 구별이 없이 진심으로 작용하고 있는 경지이다. ⑨즉체즉용(卽體卽用)은 본체에 계합하고 작용에 계합하여 본체와 작용이 자유롭게 걸림이 없는 경지이다. ⑩투출체용(透出體用)은 안팎으로 자유로워 본체와 작용마저 초월하는 경지이다.
또한 나옹 혜근(懶翁 慧根, 13201376)은 승과(僧科)로서 주2을 실시하였는데, 시험에 응시하는 승려를 대상으로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을 제시하여 응시자의 자격과 실력을 판별하였다.
공부십절목은 특히 간화선의 화두공부에서 참구해야 할 대상을 선리(禪理)를 동원하여 제시한 것이다. ① 시방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색을 보고도 색을 초월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서도 소리를 초월하지 못하는데, 그 도리를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②이미 색과 소리를 초월했다면 공능을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공능을 보여야 하는가. ③이미 공능을 보였다면 공능에 익숙해야 하는데 어떻게 익숙해야 하는가. ④이미 공능에 익숙해졌다면 그 공능마저 잊어야 하는데 어떻게 공능을 잊어야 하는가. ⑤이미 공능을 잊었다면 감정이 냉담하여 마치 목석과 같고 온전히 아무 맛도 없고 온전히 기력이 없어져서 분별의식이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여 심의식이 작용하지 못하고 또한 허깨비의 몸으로 인간세계에 살고 있는 줄도 모르게 된다. 바로 이와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때는 과연 어떤 시절이던가. ⑥이미 공부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서는 동정(動靜)에도 따로 분별이 없고 오매(寤寐)에도 늘상 똑같으며 온갖 경계를 대하더라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일체를 놓쳐버려도 전혀 상실한 것이 없다. 그래서 마치 어리석은 강아지가 뜨거운 기름사탕을 함부로 집어삼킨 것처럼 핥아먹을래야 핥아먹을 수도 없고 또 내뱉을래야 내뱉을 수도 없다. 자, 이런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해야 그 상황을 훌륭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는가. ⑦그러다가 갑자기 자기의 온 몸뚱아리를 완전히 탈락한 것처럼 졸지에 의단을 해결해버렸을 경우에 어떤 것이 그대의 본래 자성인가. ⑧이미 본래자성을 깨우쳤다면 모름지기 자성의 본래작용과 주3의 주4작용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자성의 본래작용이고 수연의 응연작용인가. ⑨이미 자성의 본래작용과 수연의 응연작용을 알아차렸다면 반드시 생사를 주5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에 이르러서 어떻게 생사를 해탈할 것인가. ⑩이미 생사를 해탈했다면 모름지기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몸뚱아리는 각자 흩어져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공부십절목」은 달리 당문구(當門句)와 입문구(入門句)와 문내구(門內句)의 「입문삼구(入門三句)」 및 삼전어(三轉語)와 함께 공부선(功夫選) 뿐만 아니라 당시 주6의 일례로서 부각되었다.
이후에 용성 진종(龍城 震鐘, 1864~1940)은 『용성선사어록』권상의 말미에서 나옹의 「공부십절목」에 대하여 주석을 붙여 유행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