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초기인 1398년(태조 7) 과천 읍치(邑治)의 동북방 2리 지점의 관악산록에 지어졌으며, 이때 명칭은 과천향교였다. 현재 옛터의 위치는 실전되어 정확하지 않다.
1400년(정종 2)에 소실되었으나, 1407년(태종 7)에 중건하였다. 그 후 주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였고, 병자호란 때도 소실되었으나, 1639년(인조 17) 당시 현감이었던 최응형(崔應亨)이 중심이 되어 중건하였다.
숙종 때 이 지역에 과거급제자가 없는 것은 향교의 터가 나쁘기 때문이라는 유생들의 논의가 있어서 1690년 당시 현감이었던 황이명(黃爾明)이 현재의 위치인 읍치소(邑治所) 서쪽 2리 지점으로 옮겼다.
1941년 그동안 방치되어 퇴락한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을 당시 직원(直員) 김동호(金東浩)가 중심이 되어서 중수하였고, 1944년 일제의 소위 1군 1향교 원칙에 의해 당시 시흥군 관내에 있었던 안산향교와 시흥향교가 폐지되고 과천향교로 통합되었다. 1959년에는 시흥향교로 개칭되었다.
1972년 문화공보부에 의해 문화재건조물 경기 제12호로 지정되었고, 1981년 향교 외곽에 300여 평의 유림회관과 관리실을 신축하였으며,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로부터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996년에는 다시 과천향교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건물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이며, 홍살문과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나오고, 그 뒤에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나타나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익공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였던 것을 좌우 양쪽으로 1칸씩 증축하였다.
과천향교 대성전에는 모두 25위가 봉안되어 있다. 문선왕 공자를 비롯하여, 증자, 안자, 자사, 맹자, 주희, 정호의 중국의 학자들과 우리나라의 명현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현재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강좌 및 문화프로그램이 개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