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영

  • 역사
  • 제도
  • 조선 후기
조선 후기 개성부의 군무를 맡아보던 병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안상윤 (정신전력학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개성부의 군무를 맡아보던 병영.

내용

1676년(숙종 2) 개성부(開城府)에 대흥산성(大興山城)이 축성되자 당상무관(堂上武官)이 파견되어 이를 관리하였다. 그 뒤 1680년에는 개성의 군무와 산성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관리영을 설치하고 김석주(金錫胄)로 하여금 업무를 관장하게 하고, 대흥산성에 파견된 당상무관을 관리사로 승격시켜 현지의 업무를 맡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1684년에 훈련도감의 건의로 영종진(永宗鎭)이 어영청에 속한 예를 좇아 대흥산성도 훈련도감의 관할로 하여 훈국대장(訓局大將)의 통제를 받게 하자, 개성의 군무는 이중적인 지휘체계의 모순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1691년에 이르러 종래의 관리사를 개성유수가 겸하게 함으로써 개성의 군무를 일원화시켰다.

관원은 종2품의 관리사 1인, 대흥산성에 상주하는 정3품의 중군 1인, 종사관 1인, 별장 2인, 천총(千摠) 3인, 백총(百摠) 4인, 파총(把摠) 6인, 초관(哨官) 32인, 교련관(敎練官) 8인, 기패관(旗牌官) 36인, 당상군관 50인, 군관 250인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만기요람(萬機要覽)』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