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개설
내용 및 특징
원통에 가까운 신체는 지극히 단순하게 처리되어 상체와 하체의 구분이 없고, 손과 발만 알아볼 수 있다. 가슴 앞에 모은 손으로 둥근 약합(藥盒)을 들어서 약사여래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있으나, 현지 지명과 사찰지의 이름이 모두 미륵이기 때문에 미륵불로 신앙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충주 미륵리석조여래입상의 경우에는 수인(手印)이나 지물(持物)로 불상의 이름을 확정하기 어렵다. 소박한 신체에 비해 얼굴은 공을 들여 이목구비를 분명하게 나타냈다. 양감이 전혀 없는 둥근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수평적인 눈, 넓적한 코와 입술이 치졸한 수법으로 딱딱하게 묘사되어 장승의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와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신라의 멸망을 슬퍼하면서 금강산으로 가다가 월악산에 이르러, 덕주공주는 제천 쪽에 덕주사를 짓고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1964년 지정)을 새겨 남쪽을 바라보도록 만들었고, 태자는 이곳에 북쪽의 덕주사를 바라보도록 석굴을 세운 뒤 개골산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도록』(전라남도, 1992)
-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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