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애집 ()

괴애집 / 시
괴애집 / 시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유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3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유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3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92년(정조 16) 유지의 현손 유호원(柳浩源)이 유문을 모아 1책을 편집하고, 1863년(철종 14) 유지의 후손 유치호(柳致皜)가 또 다른 1책을 편집하여 모두 4권으로 간행하였다. 권두에 유장원(柳長源)과 김대진(金岱鎭)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유형진(柳衡鎭)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목활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28수, 소(疏) 4편, 계(啓) 12편, 사장(辭狀) 6편, 권2에 서(書) 69편, 권3에 잡저 7편, 제문 5편, 묘표 1편, 권4에 부록으로 사제문(賜祭文) 1편, 제문 7편, 애사(哀辭) 1편, 행장 1편, 행략(行略) 1편, 묘갈명·묘지명·언행기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절구(絶句) 6편에 불과한데, 「고성도상망금강산(高城道上望金剛山)」·「등영남루(登嶺南樓)」 등은 격조와 운치가 있는 작품이다. 서에는 이현일(李玄逸)과 주고받은 것이 5편이나 되어 이현일과의 두터운 교분을 말해주고 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잡저의 「방례변증(邦禮辨證)」이다. 효종의 상사(喪事) 때 복제 의정에 관한 변론인데, 이조판서 송시열(宋時烈)이 대왕대비의 복을 기년(朞年)으로 정한 것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것은 당시 예조의 낭관(郎官)이었던 저자가 하료(下僚)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는 못하고, 『의례(儀禮)』 각 장의 소주(疏注)와 『춘추』 등에서 전거를 들고 저자 자신이 논변을 가해서 그 복제에 대한 불복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잡저 가운데 「반중기사(泮中記事)」·「남궁일록(南宮日錄)」·「대중기일(臺中記日)」 등은 저자가 사환(仕宦)하면서 있었던 일을 날짜별로 적은 일기로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계에는 당시 송시열과 의견을 같이 했던 민유중(閔維重)을 죄인으로 척출(斥黜)했다가 그 명을 환수한 숙종에 대해 죄인 민유중을 석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논민유중계(論閔維重啓)」를 비롯하여 김수항(金壽恒)·정태화(鄭太和)·홍만용(洪萬容)·이익(李翊)·김석주(金錫胄), 그리고 공주목사·영광군수 등 전직·현직 대신과 외관들의 비행에 대한 논계(論啓)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특히 정태화가 효종 국상 당시 수상인 송시열이 제창한 잘못된 예절을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에 왕묘에 배향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극 반대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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