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명(北溟)출신으로 9척의 장신에 얼굴은 희고, 눈에서는 광채가 났다고 한다. 대무신왕이 친히 부여를 정벌할 때 자원해서 종군하여, 서기 22년(대무신왕 5) 2월 부여 남쪽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여왕 대소(帶素)를 사로잡아 목을 베는 등 큰 공을 세웠다.
그 해 10월에 죽었는데, 왕은 생전의 공로를 생각하여 북명산(北溟山) 남쪽에 장사하게 하고, 아울러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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