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5년(광해군 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담(金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9년에 박승임(朴承任)·김륵(金玏)·김영조(金榮祖)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맡아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후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상현사(象賢祠), 강당인 입교당(立敎堂), 신문(神門)·동재(東齋)·서재(西齋)·주소(廚所) 등으로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