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華嚴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화엄경』석경.
내용
또한, 그는 이 석경의 제작연대를 장륙전보다 훨씬 후대인 통일신라 말로 추정하면서 그 실증으로, 첫째 80권과 40권 『화엄경』은 의상 때 새겨졌을 수 없다는 점, 둘째 석각의 자체는 거의 해서(楷書)이고 서법으로 보아서는 우군서법(右軍書法)을 쓰고 있는데, 그 자체는 통일신라 말에 최치원(崔致遠)이 쓴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와 비슷하다는 점, 셋째 화엄결사(華嚴結社)와 각화엄경불사(刻華嚴經佛事)가 최초로 시도된 것은 헌강왕 때의 일인데, 그때 최치원이 원문(願文)을 쓰고 조야(朝野)의 노력으로 40권 『화엄경』 10질을 완성하였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진응은 이 석경이 문무왕 때의 것이 아니라 헌강왕대에서 경순왕대에 이르는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또한, 석경의 돌이 모두 경주에서 가져온 옥석(玉石)이라는 속설에 대해서도 그 돌들이 모두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납석(蠟石)이며 원래는 옅은 청색의 것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면서 변색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현황
그러나 6·25 때 분류, 포장되었던 상자가 파손되고 석경 파편이 다시 노천에 퇴적되었으며, 1961년 9월 8일부터 10월 6일까지 29일에 걸쳐 재정리되었다. 현존하는 석경편은 1만4000점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대중소로 나누어져 163상자로 분류, 정리되었는데, 석경편의 크기는 몇 자에서부터 50자 이상에 달하는 것도 있다.
그 색깔은 회갈색·담홍색·암회색의 세 가지 색조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변색은 화재시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석경의 크기는 현존품에 비추어 방전(方塼:네모 반듯한 벽돌)의 크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고, 아래위에 홈을 발견할 수 있어 은구(隱具)를 끼워 고정하여 사방 벽에 장엄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때로 부조(浮彫)된 것과 선각(線刻)된 문양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경판화에서 볼 수 있는 화엄변상도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봉성지(鳳城誌)』
-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 「화엄석경 조사정리 약보」(정명호·신영훈, 『고고미술』62, 한국미술사학회,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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