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오경인 『대학』·『논어』·『맹자』·『중용』·『예기』·『춘추』·『시경』·『서경』·『역경』 등 9개의 강좌를 각기 재(齋)로 편성하여 9재라 하였다. 이는 조선 초기의 법전인『경제육전』의 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분재강경(分齋講經)의 법이다.
이러한 구재법에 따라 유생들은 대학재에서 시작하여 논어재·맹자재·중용재의 사서재(四書齋)를 차례로 끝내고, 다시 예기재·춘추재·시재·서재·역재의 오경재(五經齋)를 차례로 이수하게 하였다. 1재를 마치면 예조와 대간(臺諫)에서 각각 1인의 관원이 성균관의 관원과 함께 그 성적을 고강(考講)하였다.
고강에 통과하면 다음 과정을 통과할 경우에는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으로 역재까지 끝난 사람에게는 식년마다 회시(會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이 법은 1429년(세종 11)경부터 여러 번 그 실시를 원하는 상소가 있었으나 1466년(세조 12)에야 실시를 보게 되었다.
한편 『고려사』에 의하면 1367년(공민왕 16)에 성균좨주 (成均祭酒) 임박(林樸)의 상언으로 성균관이 중건되고 생원을 늘려 처음으로 5경 4서재로 나누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 구재식의 교육방법은 고려시대의 국자감·12도 등에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실시된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