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윤재(潤哉), 호는 포헌(逋軒). 아버지는 권진원(權震元)이며, 어머니는 예안김씨로 김종발(金宗渤)의 딸이다. 열여섯 살에 권두인(權斗寅)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1690년(숙종 16) 향시에 합격하고, 동당시(東堂試)에 응시하려 했는데 족형 구소(鳩巢) 권성구(權聖矩)가 시관(試官)이었으므로 피혐(避嫌)하여 단념하고 말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향중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고, 포로가 된 도적이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무함(誣陷)을 입었으나, 영조가 애매한 줄을 알고 관찰사 박문수(朴文秀)에게 타일러 무사하게 하였다. 1757년에 수직(壽職: 80세 이상 노인에게 주던 명예직)으로 통정대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초년에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여 천문·지리·수학까지도 매우 조예가 깊었으나, 중년 이후로는 오로지 주자학에 전념하였고, 특히 『중용』과 『대학』을 평생의 지침서로 삼았다. 저서로는 『몽구(蒙求)』와 『포헌집(逋軒集)』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