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해운판관, 지평,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7년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어, 시사를 논하다가 파직, 유배된 수찬 김세흠(金世欽)의 억울함을 상소하였으나 왕의 노여움을 사 해남으로 귀양갔다. 1711년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정언으로 복직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 『정묘식년사마방목(丁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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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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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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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사마시 급제 : 『정묘식년사마방목(丁卯式年司馬榜目)』(국립중앙도서관[古602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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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十二(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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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해남에 유배 : 『숙종실록』 45권, 1707년(숙종 33) 10월 22일. "권두기의 배소·압거 단자를 전지하는 즉각 봉입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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