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명최승왕경』의 저자 주1은 당나라 승려인데, 산동성(山東省) 제주(齊州) 출신으로 자(字)는 문명(文明)이다. 어려서 출가한 후 671년에 인도에 가서 25년간 대 · 소승을 배운 후 귀국하여 695년에 낙양(洛陽)으로 돌아왔다. 낙양 불수기사(佛授記寺), 남경(南京) 복선사(福先寺),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 · 대천복사(大薦福寺) 등에서 『금광명최승왕경』을 비롯해 『대공작주왕경(大孔雀呪王經)』 · 『약사유리광칠불본원공덕경(藥師琉璃光七佛本願功德經)』 등 56종 230권을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 ·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을 저술하였다.
『금광명경』은 4세기 경 인도에서 초기 대승 경전의 하나로 성립되었다. 『금광명최승왕경』은 이 경전을 중국에서 한역한 여러 번역본 중 하나로, 당(唐)나라 때 의정이 703년에 서명사에서 번역하였다. 이역본으로 중국 북량(北涼)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금광명경(金光明經)』이 가장 일찍 번역된 것이다. 이외에 북주(北周)의 야사굴다(耶舍崛多)가 『금광명갱광대변재다라니경(金光明更廣大辯才陀羅尼經)』 5권을, 양(梁)나라 주2가 『금광명제왕경(金光明帝王經)』 7권을, 수나라 보귀(寶貴)가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을 한역하였는데, 이 중 담무참 본 4권, 보귀 본 8권, 의정 본 10권이 현존하며 고려대장경에도 수록되었다. 야사굴다 본은 현존하지 않으나 보귀 본에 인용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금광명최승왕경』은 전체 10권 31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경은 4권과 8권 본에 비하여, 기존 품을 강조하기 위해 세분화하였기 때문에 품의 수와 내용이 증가했다는 구조적 특징이 있다. 이 경의 교의(敎義)는 반야(般若) · 법화(法華) · 화엄(華嚴) 등의 대승경전에 의거하고 있다.
경의 전반부는 부처님의 수명이 영원함을 밝힌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4권과 8권본에서 참회를 권장하는 「참회품(懺悔品)」에 해당하는 「몽견금고참회품(夢見金鼓懺悔品)」, 대승불교의 주요한 교의인 공(空)을 설법하여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여래의 법신(法身)을 구할 것을 강조한 「중현공성품(重顯空性品)」, 「의공만원품(依空滿願品)」 등은 이 경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4권과 8권 본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삼신(三身)에 대해 정의하고, 열반에 대한 30가지의 이유와 의미를 부여했으며, 법신의 진실한 역할과 입장에 대한 확신을 통해 불신에 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4권 본 ·8권 본 ·10권 본 모두 참회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주3는 내성적 ·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행동에 대한 가르침이 중심이 된다. 이 경은 참회 뿐만 아니라 참회를 통해 타인을 위한 자비를 획득하는 모습을 상세히 언급해 자비 사상을 부각시켰다. 「최정지다라니품(最淨地陁羅尼品)」, 「금승다라니품(金勝陁羅尼品)」 등에서 자비를 바탕으로 한 보살행을 설명하고 「연화유찬품」에서는 자비를 바탕으로 한 참회법을 찬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금광명경』 여러 번역본의 내용에 따라 참회멸죄의 주4에 의거하여 우리 나라 불교 예불의식의 정형인 찬탄 · 참회 · 권청(勸請) · 주5 · 회향(廻向)의 오회(五悔)가 정립되었다. 「금광명최승참의(金光明最勝懺儀)」는 「법화삼매참의(法華三昧懺儀)」와 함께 현재 전래되는 불교의식의 기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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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명경』은 호국안민 · 왕도 · 자기희생 · 이타(利他) 등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사천왕을 비롯한 여러 천신(天神)과 선신(善神)들이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준다는 내용을 설한 점은 진호국가(鎭護國家)의 경전으로 존숭받게 한 이유가 되었다. 즉, 「사천왕호국품(四天王護國品)」 등의 품에서는 사천왕과 대변천(大辯天) 등의 여러 신들이 이 경을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이 경을 독송하고 강설하는 국왕과 백성을 수호하여 국난과 기아와 병 등을 제거하고 국가의 안온과 풍년을 가져다 줌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국왕의 권위를 세움과 아울러 국왕에게 치세의 요도(要道)를 설법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신라가 당나라의 침공 소식을 듣고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운 것도 이와 관계 있다고 파악하는 근거이다. 고려 시대에는 이 경전을 바탕으로 한 도량・법석(法席)[^6]・강회(講會)[^7] 등이 전개되었는데, 기우(祈雨)의 목적에서 금광명도량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또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다라니를 통한 수행의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도 주요한 특징이다. 원효(元曉)를 비롯해 승장(勝莊), 경흥(憬興) 등이 이 경에 대한 주석서를 남겼는데 온전하게 전하지 않아 여러 저술에 산재하는 단편을 집일(輯佚)한 형식으로 일부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