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애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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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하석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2년에 간행한 시문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허호구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하석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2년에 간행한 시문집.

내용

2권 1책. 석인본. 1972년 증손인 상환(尙煥)·성렬(成烈)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권용현(權龍鉉)의 서문과 권말에 권혁기(權赫琪)와 그의 종손인 동달(東達)·동운(東運)·성렬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35수, 권2에 서(書) 19편, 잡저 4편, 서(序) 2편, 기 1편, 발 1편, 상량문 2편, 축문 6편, 제문 9편, 행록 1편, 부록으로 제문 1편, 유사 1편, 가장 1편, 묘갈명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의 「만흥(謾興)」은 저자가 서울에 올라와서 보고 느낀 것을 자신의 호방한 기개를 살려 쓴 시로서, 기상이 뛰어난 사기(辭氣)를 볼 수 있다. 서(書)는 주로 관인들과 세로(世路)에 대하여 교환한 내용이 많다.

잡저 가운데 「한천민보답회문(寒泉民堡答回文)」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가 함락되자, 8도에 민보를 만들도록 한 것에 대한 회답문이다. 그는 천험에 의지하여 보를 만들면 불우의 변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대구지방의 한천(寒泉) 어귀를 막으면 만전한 계책이 된다고 주장하고, 부근 각 지역의 활용방안을 상세하고 조리 있게 설명하여 실용의 묘를 살리고, 다시 경영에 대한 방도를 상론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밖에도 「대구거자청통부사진관정영문」은 당시 영남의 공도회(公都會)를 여러 곳에 나누어 치르는 것은 응시생에게 가까운 시장(試場)을 편리에 따라 선정하도록 한 제도였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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