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전투에 참전하였고, 『북애문집』 등을 저술하며 후진 양성과 고을의 풍속 교화에 힘쓴 학자.
이칭
  • 북애(北厓)
  • 지숙(止叔)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산(光山)
  • 사망 연도1603년(선조 3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순릉참봉(順陵參奉)|정제장 겸 소모사(整齊將兼召募事)
  • 출생 연도1547년(명종 2)
  • 출생지경상북도 안동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허호구 (단국대학교동양학연구소,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북애문집 미디어 정보

북애문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전투에 참전하였고, 『북애문집』 등을 저술하며 후진 양성과 고을의 풍속 교화에 힘쓴 학자.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지숙(止叔), 호는 북애(北厓). 예안(禮安)의 오천촌(烏川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병사 김부인(金富仁)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로 이현보(李賢輔)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2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순릉참봉(順陵參奉)이 되었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상에 모두 3년간씩 여묘(廬墓)를 살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그의 종제(從弟) 김해(金垓)와 함께 고을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고, 정제장 겸 소모사(整齊將兼召募事)가 되어 많은 군량을 모았다.

또, 경주의 집경전(集慶殿)에 있던 태조의 어진(御眞)이 예안의 백동서당(柏洞書堂)에 이안(移安)되었을 때, 임시로 수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안동의 27의사와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 들어가 목숨을 다하여 싸워 공을 세웠다.

1598년 도산서원의 산장(山長)이 되어 『퇴계전서(退溪全書)』의 간행에 힘을 쏟아 그 일을 끝냈다. 1602년 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와 이황이 남긴 학문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또한, 고을의 풍속교화에도 힘써 『여씨향약』을 본떠 향규를 만들어 향인들을 교도하였다.

『중용』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이기(理氣)에 대해서도 깊은 식견이 있었다. 사후에 임진왜란 때의 선무원종공(宣武原從功)으로 사헌부감찰에 추증되었다. 저서에 『북애문집(北厓文集)』 4권이 있다.

참고문헌

  • - 『북애문집(北厓文集)』

  • - 『조은유고(釣隱遺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