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 띠고리)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공예
유물
문화재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시대의 금제 띠고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 ?具)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62년 12월 20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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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시대의 금제 띠고리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틀 위에 금판을 놓고 두드려서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표현하였다. 그다음 금실과 크고 작은 금알갱이, 비취옥 등으로 장식하여 완성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말발굽 모양으로,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직각으로 각이 진 형태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장식 기법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또 누금세공의 수법이 매우 뛰어나며 용 7마리의 배치가 율동감이 있다. 이 띠고리는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금제 공예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정의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낙랑시대의 금제 띠고리.
개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916년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제 띠고리로, 허리띠에 연결하는 고리장식이다. 무덤 주인공의 배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칼, 반지, 옥인과 함께 출토되었다. 기원후 1세기 전반경이라는 시기를 알 수 있는 낙랑고분 중의 하나로 부장품의 규모가 가장 커 고분 주인의 신분이 상당히 높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다른 고분의 출토품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제작수준이 매우 높은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 금제 띠고리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유사한 예들이 확인되어 주목된다. 신장성[新疆省] 옌치후이족자치구[焉耆回族自治區], 산둥성[山東省] 다롄시[大連市] 잉청쯔[營城子] 고분에서 형태, 제작기법, 문양이 거의 동일한 띠고리가 출토되었고, 후난성[湖南省] 안향현(安鄕縣) 유홍묘(劉弘墓)의 경우 용의 형태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한 허리 띠고리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출토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여러 점의 예가 전해진다.

낙랑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물론 낙랑지역 자체에서 생산된 것도 있지만 금제 띠고리처럼 낙랑과 인접한 곳이 아닌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유래한 장신구들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이외에도 정백동 37호분을 비롯하여 정백동 2호분, 정백동 92호분, 석암리 219호분에서 출토된 은제 타출동물문 띠고리 역시 중국 윈난성[雲南省] 진닝[晉寧] 스한산[石寒山] 7호묘에서 출토된 띠고리와 유사해 한나라 왕실공방의 제작품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남녀 합장묘인 정백동 3호분, 37호분에서도 여성의 장신구로 사자형 수식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수식은 현재 광둥성[廣東省], 장쑤성[江蘇省]과 같은 중국 남방에서만 발견되는 장신구로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낙랑이 중국 한(漢)나라에 의해 설치되어 420여 년간 존속하면서 한반도에 위치했던 독특한 지역사회의 성격과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낙랑은 군현의 지배를 위해 중국에서 새로 이주한 한인들과 군현 설치 이전에 이미 이주하였던 토착 한인들, 위만 조선의 토착민 등의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는데 장신구들도 다양한 국제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징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말발굽 모양으로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직각으로 각이 진 형태이다. 앞쪽에는 외곽의 곡선을 따라 둥근 곡선형의 구멍을 낸 후 중간에 걸쇠를 달아 허리띠를 끼울 수 있는 걸쇠 장치를 마련하였다. 측면에는 작은 구멍들이 2개씩 열을 지어 뚫려 있는데 띠고리를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에는 얇은 금판을 뒤쪽에서 치는 타출기법을 이용해 7마리의 용을 고부조로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그 밖으로는 얇은 금선으로 오메가 형태의 좁은 대를 두른 후 꽈배기처럼 꼰 금사를 이용해 말발굽 형태를 따라 외곽에 둘렀다.

중앙에는 커다란 용 한 마리가 S자형의 곡선을 크게 그리며 배치되었고, 주변에 6마리의 작은 용을 두어 장식하였다. 용은 물방울 형태의 눈이 있고 구름처럼 동그랗게 말린 코, 두 개의 이빨을 가진 형태이다. 큰 용의 이빨 밑에는 작은 용이 대면해 있고 큰 용의 꼬리, 다리, 등 부분에 작은 용들이 추가로 배치되었다. 나머지 두 마리의 작은 용은 걸쇠 끝부분에서 마주한 모습이다. 작은 용들은 상부만을 생략해 표현한 듯 세 개의 발톱을 지닌 앞발과 몸의 일부를 볼 수 있다. 바탕에는 파도문을 표현해 부드러운 곡선이 층층이 표현되었다.

띠고리는 여러 가지의 다양한 장식기법이 화려하게 표현되었다. 용무늬를 도드라지게 표현한 타출기법 외에도 금줄, 금알갱이를 붙여 장식하는 누금세공기법, 하늘색 터키석을 감입하는 감장기법이 사용되었다. 누금세공기법으로 표현된 금알갱이는 크기가 다양한데, 용의 중심이 되는 등 부위는 가장 굵은 알갱이를 부착하였고 머리와 꼬리로 내려갈수록 작은 알갱이를 붙여 차이를 두었다. 반면 얇은 선으로 표현한 바탕의 곡선과 용의 발에는 매우 작은 금알갱이를 부착하였다. 또한 얇은 금선을 물방울 형태로 만들어 용의 눈이나 바탕에 붙여 터키석을 감입했는데 원래는 40여 개가 있었을 것이나 현재는 7개만을 볼 수 있다. 중앙의 큰 용과 마주한 작은 용의 눈에서 붉은 색의 안료를 볼 수 있어, 터키석 외 다른 안료나 보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의의와 평가

석암리 9호분 출토 금제 띠고리는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금제공예품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의의가 있다. 낙랑이 설치되기 이전부터 토착지역의 전통과 취향 속에 다양한 문화를 섭렵할 수 있었던 사회적인 배경과 함께 동아시아에서 출토되는 금제 장신구들과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으며, 장식기법으로 이용되었던 누금세공기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 삼국시대 누금세공의 연원과 성격을 규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유물이다.

참고문헌

『국보』 1 고분금속(한병삼 편, 예경산업사, 1983)
『낙랑』(국립중앙박물관,2001)
『낙랑고분문화 연구』(고구건이, 학연문화사, 1995)
「낙랑 정백동 3호분과 37호분의 남방계 사자형 수식과 상인의 활동」(이송란, 『미술사학연구』245, 한국미술사학회, 2005)
「중국 고대 누금세공의 연원과 전개」(이송란, 『미술사연구』15호, 미술사연구회, 2001)
『樂浪郡時代ノ遺蹟(本文)』古蹟調査特別報告第4冊(關野貞 外, 朝鮮總督府,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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