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초교파 신문이었으나 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기관지가 되었다. 이 신문의 전신은 1946년 1월 17일 창간된 『기독교공보』이다.
조선기독교회 남부대회 기관지로 출발한 이 신문은 뒤에 그 운영권이 김응락(金應洛)·토머스기념사업회 등으로 넘어가면서 개인 신문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기독공보’라는 제호는 1948년에 쓰기 시작했고, 지령은 『기독교공보』의 창간에서부터 계산되고 있다.
1949년 4월 당시 발행인 겸 인쇄인은 김응락, 편집인은 김춘배(金春培)였고, 신문 대판(大版) 크기 2면에 국한문혼용 내려쓰기 형태였다. 이 신문은 장로회총회 교육부에서 인수하여 발행되다가 6·25전쟁으로 발행이 중단되었고, 1951년 12월 25일부산에서 복간(140호)된 뒤 1953년 10월서울로 사무실을 옮기기까지 꾸준히 발행되었다.
1954년 9월부터는 장로회총회 기관지가 되었고, 1964년 1월부터 지면을 4면으로 늘렸다. 1966년 9월 장로회총회에서 폐간되기까지 총 848호를 발간하였다. 이 신문은 1970년 7월 31일『한국기독공보』로 복간되어, 현재 24면의 주간신문으로 발행되고 있다. 한국기독공보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김상옥로 30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