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창문사(彰文社)에서 간행하였고, 1948년 산호장(珊瑚莊)에서 재판하였다. 장시(長詩)를 표방하고 써낸 『기상도』는 「세계(世界)의 아츰」·「시민행렬(市民行列)」·「태풍의 기침시간(起寢時間)」·「자최」·「병든 풍경」·「올배미의 주문(呪文)」·「쇠바퀴의 노래」라는 일곱 개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었다.
괄호 안에 넣은 고딕체까지 합쳐 약 400여 행에 이르는 이 작품은 일종의 문명비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기상도』의 작중 화자는 세계지도를 따라 여행한다. 그리고 신문의 토픽난에 보도됨직한 사건들을 시 속에 등장시켜 풍자하고 있다. 예컨대 “독재자(獨裁者)는 책상을 따리며 오직/‘단연히 단연히’ 한 개의 부사(副詞)만/발음하면 그만입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 밖에도 김기림은 외국산의 꽃이름, 국제열차, 항구의 이국풍, 기상도, 세계지도, 외국영사관 등을 등장시켜서, 이 시가 모더니즘의 작품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소재의 기이함이 곧 시정신과 통하는 것은 아니다. 모더니즘이란 단순하게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참다운 역사의식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기림은 서구의 모더니즘 이론을 이른 시기에 비교적 정확하게 익힌 시인이다. 엘리어트(Eliot,T.S.)·흄(Hulme,T.E.)·리처즈(Richards,I.A.) 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시론을 정립하고 또한 작품화하였다. 따라서 『기상도』의 「시민행렬」에서 보듯이, 기지·해학·풍자·반어 등의 수법을 통해서 일종의 지성적인 시를 써보려 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의 문화적 저변, 철학적 기반에 대한 이해를 확실하게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기상도』는 역시 실험적인 시로 떨어지고 말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시의 리듬, 음악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데, 그것은 시각적 인상을 제시하는 데에 작자가 지나치게 몰두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가 밝힌 창작의도에 “한 시인의 정신과 생리에 다가드는 엄청난 세계사의 진동을 한 편의 시 속에 놓치지 않고 담아보고 싶었다.”라는 말은 음미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지나치게 내용 위주로 편향된 프로문학과 기교성으로 치닫는 시문학파의 중간적 입장을 새로운 기법으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비록 실패했다 할지라도 시대에 대한 감수성과 표현기교를 결합해보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작자는 모더니즘 시란 우선 언어에 대한 자각과 현대문명에 대한 감수성, 이 두 가지를 기초로 하여 씌어진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도에 그치고 말았으나 우리나라 주지주의 문학의 정착에 한 몫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