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효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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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이칭
  • 금강(錦江), 인재(忍齋)
  • 백고(伯顧)
인물/전통 인물
  • 본관행주(幸州)
  • 사망 연도1593년(선조 26)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30년(중종 25)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석무 (국회의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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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벼슬에 오르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호남의 은덕군자로 불린 학자.

개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백고(伯顧), 호는 금강(錦江)·인재(忍齋). 아버지는 호조판서로 추증된 고흥군(高興君) 기대유(奇大有)이며, 어머니는 함양오씨(咸陽吳氏)이다. 기효근(奇孝謹)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의 문인이며, 기대승(奇大升)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일생 동안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후진양성에 주력하여 호남의 은덕군자(隱德君子)로 불리었다.

특히, 김인후가 그에게 지어준 “우주의 중간에 두 분이 있는데, 공자는 원기(元氣)이고, 주자는 참됨[眞]이다.”라는 시는 도를 전해받은 시로 알려졌다.

동문인 김천일(金千鎰)·정철(鄭澈)·변이중(邊以中) 등과 교유하였으며, 그의 문하에서 오희길(吳希吉)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스승 김인후가 죽은 뒤에 서태수(徐台壽)·변이중·변성온(卞成溫)·변성진(卞成振) 등과 사우를 짓는 일에 참여하여 제자의 직분을 다하였다. 죽은 뒤 호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장성의 추산서원(秋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노사집(蘆沙集)』

  • - 『대산집(臺山集)』

  • - 『동국문헌록(東國文獻錄)』

  • - 『전고문헌(典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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