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년(현종 16)에 건립되었고 현재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거돈사지에 있는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1963년 지정)를 썼다. 그밖에 그의 가계나 행적을 전하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는 최충(崔冲)이 짓고 예빈승(禮賓丞) 김거웅이 썼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비문을 쓸 당시 김거웅의 관직을 알 수 있다. 전부 3천여자에 달하는 비문의 서체는 중국 당나라 때 서예의 대가였던 구양순류(歐陽詢流)의 해서체(楷書體)이다.
특히, 구양순의 글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인 「예천명(醴泉銘)」을 익힌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자경(字徑) 육분(六分)의 해서로 엄격하고 단정한 명품이며 고려시대의 여러 비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가끔 자획간의 균형을 잃고 있는 점과 공간구성면에서 조화의 묘가 흐트러진 부분이 엿보인다.
『동국금석평(東國金石評)』에서 ‘고(枯)하다’고 하고 『서청(書鯖)』에서는 ‘파유무전형(頗有無典型)’이라고 하여 호평을 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특징을 지칭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시기의 고려의 서풍이 생기가 없고 위축되는 감이 있으므로 그 상황을 고려한다면 역시 뛰어난 서예가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