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여산폭포시」, 「창림사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개설
활동사항
그의 행적 또한 알 수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충주목(忠州牧) 불우조(佛宇條) 김생사항(金生寺項)에 “김생이 두타행(頭陀行 : 번뇌를 끊고 의식주에 대한 탐심이 없이 깨끗하게 불법을 닦는 일)을 닦으며 이곳에 머물렀기에 김생사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작품들이 모두 사찰 또는 불교와 관련된 점으로 보아 ‘호불불취(好佛不娶: 부처를 좋아해 장가를 들지 않음)’하였다는 그의 생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특히 고려시대 문인들에 의하여 해동제일(海東第一)의 서예가로 평가받아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그를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그의 진적(眞蹟: 실제의 유적)이 귀해져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서결 圓嶠書訣』에서 그의 진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김생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필적으로 현재 경복궁에 있는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이 비의 비문 글씨는 고려 광종 5년(954)에 승려 단목(端目)이 김생의 행서를 집자(集字)한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왕희지·구양순류의 단정하고 미려한 글씨와 달리 활동적인 운필(運筆: 붓 놀림)로 서가(書家)의 개성을 잘 표출시키고 있다.
또한, 짜임새나 획의 처리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틀에 박힌 글씨에서 벗어나 운치를 살리고 있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海東名蹟)』·『대동서법(大東書法)』에 몇 점이 실려 있다. 특히, 「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는 자유분방하면서 힘이 넘치는 필적이다.
이 밖에 「창림사비(昌林寺碑)」가 있는데 현재 원비는 물론 탁본조차 전하지 않는다. 단지 원나라의 조맹부(趙孟頫)가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김생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 뛰어난 조각가)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품평이 전한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한국미술전집』11-서예-(임창순 편, 동화출판공사, 1973)
- 『한국서예사』(김기승, 대성문화사, 1966)
- 『근역서화징』(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중원경김생사지」(이재준,『공간』184, 1982)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