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문」을 쓴 서예가.
내용
약 2천자의 긴 비문 중 첫머리 부분부터 7행의 ‘禪’자까지는 김원이 해서체(楷書體)로 썼고, 그 이하는 김언경이 행서체(行書體)로 썼다. 이 탑비는 우리나라 서예사상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최고(最古)의 예로서 의의가 크다. 김원의 글씨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가 구양통(歐陽通)에 가까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구양순체(歐陽詢體)의 종류이면서도 그 자획의 처리가 강경하여 힘이 배어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결구가 허술한 부분이 몇 군데 있지만, 서가의 개성이 분명하게 드러난 통일신라 비문 중 대표적인 명품이다. 이 비문의 탁본은 중국의 청나라에도 소개되어, 금석연구가 엽창치(葉昌熾)의 저술인 『어석(語石)』에서 서체의 탁월성을 칭송받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허흥식 편, 아세아문화사, 1984)
- 『한국서예사(韓國書藝史)』(김기승, 박영사, 1974)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나말여초근대기구(羅末麗初近代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역사학보』,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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