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

  • 예술·체육
  • 인물
  • 남북국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문」을 쓴 서예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무주곤미현령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은순 (전 인천교육대학, 미술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비문 미디어 정보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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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문」을 쓴 서예가.

내용

전라남도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에 있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보물, 1963년 지정)를 썼다. 884년(헌강왕 10)에 건립된 이 비의 비문은 김영(金穎)이 짓고 무주곤미현령(武州昆湄縣令) 김원과 전 병부시랑 김언경(金彦卿)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글씨체로 쓴 특이한 예이다.

약 2천자의 긴 비문 중 첫머리 부분부터 7행의 ‘禪’자까지는 김원이 해서체(楷書體)로 썼고, 그 이하는 김언경이 행서체(行書體)로 썼다. 이 탑비는 우리나라 서예사상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최고(最古)의 예로서 의의가 크다. 김원의 글씨는 중국 당나라 초기의 대가 구양통(歐陽通)에 가까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했던 구양순체(歐陽詢體)의 종류이면서도 그 자획의 처리가 강경하여 힘이 배어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결구가 허술한 부분이 몇 군데 있지만, 서가의 개성이 분명하게 드러난 통일신라 비문 중 대표적인 명품이다. 이 비문의 탁본은 중국의 청나라에도 소개되어, 금석연구가 엽창치(葉昌熾)의 저술인 『어석(語石)』에서 서체의 탁월성을 칭송받고 있다.

참고문헌

  • -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허흥식 편, 아세아문화사, 1984)

  • - 『한국서예사(韓國書藝史)』(김기승, 박영사, 1974)

  •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 - 「나말여초근대기구(羅末麗初近代機構)와 문한기구(文翰機構)의 확장(擴張)」(이기동, 『역사학보』,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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