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홍문관응교, 김해부사,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공립(公立)
  • 만회(晩悔)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성(義城)
  • 사망 연도1854년(철종 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홍문관응교|김해부사|승정원우부승지
  • 출생 연도1790년(정조 14)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동현
  • 최종수정 2025년 07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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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응교, 김해부사,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공립(公立), 호는 만회헌(晩悔軒). 아버지는 호군(護軍) 김재인(金在仁)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홍종해(洪宗海)의 딸이다. 가학을 이어받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0년(순조 30)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2년 뒤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고, 1834년 명릉별검(明陵別檢)에 제수되었다. 헌종이 즉위하자 2월에 성균관전적을 거쳐 예조좌랑에 임명되었고, 이 때 왕명을 받들어 칙사(勅使)를 영접하였다.

그 뒤 사간원정언 · 사헌부지평 · 홍문관수찬 · 장악원판사 · 현풍현감 등을 지냈다. 현풍현감에 재직하면서 아울러 창녕 · 청도 · 양산 · 영산의 4군을 다스릴 때, 밀양포(密陽浦)에 수송해 온 세미(稅米)를 둘러싸고 밀양의 관리들이 농간을 부리자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여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847년(헌종 13) 다시 지평에 제수되었고, 홍문관응교 · 김해부사 ·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한때 경연에서 임금에게 정치의 요체와 중농정책 · 교육의 진흥 등에 관해 상주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

  • - 『헌종실록(憲宗實錄)』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 주2

    : 김건수 저술 :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국립중앙도서관 우촌古3648-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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