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응교, 김해부사,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사간원정언 · 사헌부지평 · 홍문관수찬 · 장악원판사 · 현풍현감 등을 지냈다. 현풍현감에 재직하면서 아울러 창녕 · 청도 · 양산 · 영산의 4군을 다스릴 때, 밀양포(密陽浦)에 수송해 온 세미(稅米)를 둘러싸고 밀양의 관리들이 농간을 부리자 이 사실을 조정에 보고,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여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1847년(헌종 13) 다시 지평에 제수되었고, 홍문관응교 · 김해부사 · 승정원우부승지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한때 경연에서 임금에게 정치의 요체와 중농정책 · 교육의 진흥 등에 관해 상주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
- 『헌종실록(憲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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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방목(國朝榜目)』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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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건수 저술 : 『만회헌문집(晩悔軒文集)』(국립중앙도서관 우촌古3648-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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