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출신.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무예를 닦아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7년(선조 20) 경성판관이 되어 두만강변 야인을 소탕하는 데 전공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부사로 경상도관찰사 김수(金睟)의 막하에서 군사의 규합, 군량조달 등에 노력하였다. 이듬해 황해도방어사가 되어 관찰사 유영경(柳永慶)의 명에 따라 해주의 방어를 맡았으며, 1594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전라도 방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적이 사천·고성 등지로 상륙하여 남원을 포위하자 조방장(助防將)으로 전주에 있던 김경로는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 남원으로 들어가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과 함께 명나라의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을 도와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진지에서 전사하였다.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봉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