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장례원행판결사, 부제학, 호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7년 홍문관교리로서 통신사 여우길(呂祐吉)과 함께 통신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후 첫번째 사절로 일본에 건너가 국교를 다시 열게 하고 임진왜란 때의 포로 1,340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1618년(광해군 10) 호조참판이 되고, 이듬해 장례원행판결사(掌隷院行判決事)가 되었다. 학문이 뛰어나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부제학과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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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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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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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통신사 일본행 : 선조실록214권, 1607년(선조 40) 7월 19일. "여우길·경섬 등이 일본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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