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시백과 박씨의 결연담으로 구성된 전반부와 병자호란 서사로 구성된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서사가 내적이 필연성을 가지고 연결되지 않아, 두 종류의 서사가 합쳐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 병자호란 서사에서 임경업의 활약에 따라 이본의 유형이 나뉘기도 하는데, 이는 박씨가 주인공인 이본들이 우선 성립된 이후에 역사소설인 「임경업전」의 내용이 첨가·확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1권 1책. 국문 필사본(筆寫本). 활자본(活字本)으로 한성서관판 ‘박씨전’, 대창서원판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등이 있다. 필사본인 ‘명월부인전(明月夫人傳)’은 이 작품의 이명(異名)이다.
명나라 숭정(崇禎) 연간(年間) 세종조(혹은 세조조)에 한양에 살고 있는 이득춘이라는 사람이 늦게 시백이라는 아들을 얻었다. 시백은 사람됨이 총명(聰明)하고 비범(非凡)하였다.
어느 날, 박 처사(處士)라는 사람이 이득춘을 찾아온다. 박 처사는 이득춘과 더불어 신기(神技)를 겨루며 놀다가, 이득춘에게 청하여 이시백을 본 후 그 자리에서 자기 딸과 이시백의 혼인을 청한다. 이득춘은 박 처사의 신기가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박 처사의 청혼을 쾌히 응낙한다. 이득춘은 정해진 날짜에 이시백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가서 박 처사의 딸 박씨와 혼인시킨다.
이시백은 첫날밤에 박씨의 얼굴이 못생겼음을 알고 실망하여 그날 이후로 박씨를 돌보지 않는다. 가족들도 박씨의 얼굴을 보고 모두 비웃고 욕한다. 이에 박씨는 시아버지에게 후원(後園)에다 피화당(避禍堂)을 지어 달라고 청하여 그곳에 홀로 거처한다.
박씨는 이득춘이 급히 입어야 할 조복(朝服)을 하룻밤 사이에 짓는 재주를 보여 준다. 다음으로 박씨는 비루먹은 말을 싸게 사서 잘 기른 후, 중국 사신에게 비싼 값에 팔아 재산을 늘리는 영특함을 보인다. 또, 박씨는 이시백이 과거를 보러 갈 때, 이시백에게 신기한 연적(硯滴)을 주어 그가 장원 급제(壯元及第)하도록 한다.
시집온 지 3년이 된 어느 날, 박씨는 시아버지 이득춘에게 친정에 다녀오겠다고 청한다. 박씨는 구름을 타고서 사흘 만에 친정을 다녀온다. 이때 박 처사는 딸 박씨의 액운(厄運)이 다하였다고 하며, 이득춘의 집에 가서 도술(道術)로 딸의 허물을 벗겨 준다. 그러자 박씨는 일순간에 절세미인(絕世美人)으로 변한다. 이에 이시백을 비롯한 모든 가족이 박씨를 사랑하게 된다.
한편 이시백은 평안감사를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오른 뒤, 임경업(林慶業)과 함께 남경(南京)에 사신으로 간다. 그곳에서 이시백과 임경업은 가달의 난을 당한 명나라를 구한다. 두 사람이 귀국한 후, 이시백은 우승상(右丞相), 임경업은 부원수(副元帥)가 된다.
이때, 호왕(胡王)이 조선을 침공하기 전에 이시백과 임경업을 죽이려고, 기룡대라는 여자를 첩자(諜者)로 보내 이시백에게 접근하게 한다. 박씨는 이것을 알고 기룡대의 정체를 밝히고, 기룡대를 혼내어 쫓아 버린다. 이시백과 임경업의 암살에 실패한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10만 대군을 주어 조선을 치게 한다.
박씨는 천기(天機)를 보고 이 사실을 알게 되어, 이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胡兵)이 침공하였으니 이에 방비(防備)하도록 청한다. 그러나 간신(奸臣) 김자점(金自點)의 반대로 박씨의 청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호병에게 항복하겠다는 글을 보낸다. 많은 사람이 호병에게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婦女子)들만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敵將) 용홀대(龍忽大)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동생 용골대도 크게 혼내 준다. 용골대는 인질들을 데리고 퇴군(退軍)하다가 의주에서 임경업에게 또 한 번 대패(大敗)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박씨를 충렬부인에 봉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역사소설 · 군담소설(軍談小說) · 전쟁소설(戰爭小說)의 범주에 넣지만,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을 갖춘 박씨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걸소설(女傑小說)의 범주에 넣기도 한다.
「박씨전」의 이본들은 그 시대 배경과 사건 진행에 따라 세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작품을 추녀(醜女) 박씨가 탈을 벗는 이야기로 된 전반부와, 병자호란을 당하여 영웅이 활약하는 이야기로 된 후반부로 나누어 이본 간의 상호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① 전반부와 후반부가 모두 선조 · 인조 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 군이 그 하나이다. ② 다른 하나는 전반부가 세종 · 세조 대의 사건, 후반부가 인조 대의 사건으로 구성된 이본 군이며, ③ 나머지 하나는 전반부에 해당되는 이야기만이 세종 · 세조 대를 배경으로 전개된 이본 군이다.
이러한 이본의 성격을 토대로 하여, 「박씨전」은 「이시백전」과 「박부인전」이 부자연스럽게 결합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설(說)이 있다. 혹은 전후반부가 같은 작가에 의해 쓰여졌다고 볼 수 없음은 물론, 후반부도 한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없는 전승적 적층성을 지닌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작품의 결말부와 「임경업전」과의 관련성을 기준으로 이본을 분류할 수도 있다. 임경업과 관련된 서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본, 임경업과 호병의 군담(軍談)과 임경업의 한탄이 드러나는 이본, 임경업이 호국(胡國)에 들어가 세자와 대군을 데려오는 이본, 임경업의 죽음과 김자점의 처형으로 이루어지는 이본으로 나눌 수 있다. 임경업과 관련된 서사가 거의 없는 이본들은 박씨의 여성 영웅적인 면모가 부각되지만, 다른 이본들은 임경업의 활약상이 부각된다. 특히 임경업의 죽음과 김자점의 처형으로 이루어지는 이본들의 경우, 결말 부분에서 박씨의 활약상보다 임경업의 활약상이 부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박씨전」의 이본들의 경우 여성 영웅소설의 면모를 지닌 이본들이 먼저 나타난 뒤에, 역사소설인 「임경업전」의 내용이 첨가 · 확대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씨전」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은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치욕적(恥辱的) 사건으로, 정치적 · 경제적으로 조선에 큰 손해를 끼쳤으며 민중(民衆)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다. 야인(野人)이라고 경멸하던 만주족(滿洲族)에게 조선이 패배한 만큼 조선 민중들의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소설은 상상 속에서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에 대해 복수하고자 하는 민중들의 심리적 욕구를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박씨전」에서는 남성보다도 여성인 박씨를 주인공으로 삼고, 특이하게도 박씨가 초인간적(超人間的)인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로 설정되었다. 남성인 이시백은 평범한 인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가부장제(家父長制) 하의 삼종지의(三從之義)에 억압되어 살아야 했던 봉건적(封建的)인 가족 제도에서 정신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우수한 능력을 갖추어 국난(國難)을 타개(打開)할 수 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변신(變身)’의 모티프를 가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변신 모티프(變身motif)는 작품의 구성상 사건 전개의 전환점(轉換點) 구실을 하고 있다. 박씨의 변신은 부녀자로서의 비범한 덕행과 공덕은 물론, 신묘(神妙)한 도술로써 여성의 우수한 능력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된다.
또한, 변신 모티프는 박씨가 전생에 지은 죄로 인하여 추한 탈을 쓰고 태어났다고 하는 징벌(懲罰)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징벌이 해제됨으로써 박씨는 남편을 비롯한 시집 식구들과 다른 사대부(士大夫) 부인들의 사회에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박씨의 변신은 입사식(入社式)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박씨가 후원의 피화당에서 3년 동안 홀로 기거(起居)하는 기간은 시집을 위시(爲始)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에 해당한다. 이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박씨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아내와 며느리로서 시집에 받아들여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