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탄월(灘月), 초호는 하정(何淨). 서울 출생. 주로 이도영(李道榮)을 사사하였다. 1921년부터 서화협회 회원으로서 그 연례전(年例展)에 참가하였고, 1922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에 계속 입선하는 기량을 보였다. 초기에는 관념적인 전통형식의 산수화를 세밀한 기법으로 그렸다.
그러다가 1925년 무렵부터는 일본화의 현실감각과 짙은 색채표현의 영향을 받은 기교적인 화조그림에 치중함으로써 근대적인 채색화가로서의 성향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러한 일본풍의 수법은 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고, 1939년까지 참가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는 줄곧 입선에 머물렀다.
1926년에 동경에 가서 일본화를 연구한 적이 있고, 1936년에는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몇 년 동안 근무하였다. 광복 후에는 작품활동이 미진한 가운데 1949년부터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초대작가로 추대받았으며, 1960년에는 심사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하였으나 한번도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