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난한 집에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화가가 되었다. 네살 위의 같은 처지였던 이인성(李仁星)의 화단진출에 자극을 받아 수채화와 유화로 급속히 재능을 나타내었다. 16세 때인 1931년부터 대구의 양화가 그룹이던 ‘향토회(鄕土會)’ 작품전에 참가했다.
1932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약칭 鮮展)에 계속 입선하며 화가의 길을 개척하였다. 백화점 등에서 일자리를 얻어 생활을 해결하다가 1940년에 동경에 건너가 한때 태평양미술학교 야간부에서 수학하였고, 1942년에는 동경의 문부성미술전람회(약칭 文展)에도 입선하며 성공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하였다.
그러나 1943년에 대구로 돌아온 뒤 결핵을 앓으면서도, 이듬해의 조선미술전에서 「어머니의 상」이 특선에 오른 것을 끝으로 29세의 짧은 독신생애를 마치고 말았다. 작품에서는 맑고 경쾌한 색채구사와 다감한 붓놀림으로 풍경·인물·정물 등을 고루 다루었으며, 대표작으로 「어선」(1938년 조선미술전 출품작)·「해경」 등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