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내수사별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와 관련하여 호조판서 윤두수(尹斗壽), 좌찬성 윤근수(尹根壽) 등 서인의 영수가 물러남으로써 동인이 크게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1592년 내수사별좌(內需司別坐)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개성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김공량의 실정을 들어 죄를 줄 것을 청하자 강원도 산곡(山谷)으로 숨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하옥되었으나 광해군의 명으로 풀려났다. 1624년(인조 2)에는 품계가 강등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이조당쟁사연구』(강주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7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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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가계 : 『광해군일기[정초본]』 71권, 1613년(광해 5) 10월 29일.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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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공량 석방 : 『광해군일기[중초본]』 3권, 1608년(광해 즉위년) 4월 2일. "비망기로 김공량을 풀어주라고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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