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삼국시대 신라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인 왕자.
가계 및 인적 사항
단, 용수가 622년에 이미 이찬(伊湌)의 관등을 소지하고 있음과 달리, 「김유신」 열전에는 629년(진평왕 51) 고구려 낭비성(娘臂城) 공격 당시 용춘의 관등이 파진찬(波珍湌)으로 나와 용수와 용춘을 별도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635년(선덕왕 4) 10월 기사와 『삼국유사』 '황룡사구층탑조'에 용춘과 용수가 동일인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어 같은 인물의 이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덕왕의 즉위와 관련하여 진평왕 사망 당시 “성골(聖骨) 남자가 없어서” 성골 여성이 즉위하게 되었다는 언급이 남아 있어, 당시 용수는 진지왕의 아들임에도 성골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대해서는 기록에 그 기준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용춘이 성골이 아니었던 이유에 대한 해석을 통해 그 구분 기준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 진지왕의 폐위를 계기로 신분이 격하되었다는 견해와, 성골은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태자(銅輪太子)의 직계만을 대상으로 생성되었다는 견해, 왕궁에 거주하는 왕과 그 형제 등 공동가족이 성골로 구분되어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전왕(前王)의 형제 등은 진골이 되었다는 견해, 단순히 어머니 지도부인의 신분이 성골이 아니어서 용춘이 성골일 수 없었다는 견해 등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었다. 『삼국유사』 '도화녀비형랑조(桃花女鼻荆郎条)'에 나오는 비형랑(鼻荊郞)이 곧 용춘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요 활동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慶州皇龍寺九層木塔金銅刹柱本記)」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단행본
- 今西龍 箸(이부오·하시모토 시게루 譯), 『이마니시 류의 신라사 연구』(서경문화사, 2008)
- 이종욱, 『신라골품제연구』(일조각, 1999)
- 이기동, 『신라 골품제사회와 화랑도』(일조각, 1984)
논문
- 이재환, 「신라의 ‘골품제’, 그간의 논의와 약간의 전망」(『한국고대사연구』 87, 한국고대사학회, 2017)
- 金基興, 「桃花女 · 鼻荊郞 설화의 역사적 진실」(『韓國史論』 42,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9)
인터넷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g)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유사(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sy)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고대금석문(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gs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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