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따르면 780년(혜공왕 16) 2월에 이찬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켜, 무리를 모아서 궁궐을 포위하여 범하였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왕이 어려서 즉위하였는데 장성하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 돌아다니며 노는 데 절도가 없고 기강이 문란해지니,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 인심이 등을 돌렸음을 들었다.
4월에 상대등 김양상(金良相)과 이찬 김경신(金敬信)이 군대를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과 후비(后妃)는 난 중에 살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 · 충담사 · 표훈대덕조」에는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나자 혜공왕이 선덕왕(宣德王)과 김양상(金良相)에게 살해된 것으로 나온다.
혜공왕 대는 768년(혜공왕 4) 7월 일길찬 대공(大恭)과 아찬 대렴(大廉) 형제의 반란과 구십육각간의 난, 770년(혜공왕 6) 대아찬 김융(金融)의 반란, 775년(혜공왕 11) 6월 김은거(金隱居)의 반란 등 고위층들의 반란이 연이어 발생한 혼란기였다.
김지정의 난은 혜공왕 대 반란의 마지막 결정타로서, 혜공왕과 왕비의 살해로 귀결되었다. 이후 김지정의 난 진압을 주도하였던 상대등 김양상이 선덕왕(宣德王)으로 즉위하면서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시대 구분상 중대(中代)가 끝나고 하대(下代)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된다. 김지정의 가계(家系)나 구체적 인적 사항 및 반란 이외의 행적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