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정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장인으로, 이찬을 지낸 관리.
이칭
이명
김순정(金純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725년(성덕왕 24)
주요 관직
이찬(伊飡)
내용 요약

김순정은 통일신라 경덕왕의 선비(先妃) 삼모부인의 아버지이다. 혜공왕대 집정자였던 김옹(金邕)이 김순정의 손자 혹은 아들이다. 김순정 가문은 상재(上宰) 혹은 상상(上相)의 지위를 이어받으며 신라 정계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친일본적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의 장인으로, 이찬을 지낸 관리.
가계 및 인적 사항

김순정(金順貞)은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 즉위조에 따르면, 즉위 당시 경덕왕의 왕비가 이찬(伊湌) 순정의 딸이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왕력(王曆)에 출궁되어 후사가 없다고 기록된 경덕왕의 선비(先妃) 삼모부인(三毛夫人)이 곧 김순정의 딸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743년(경덕왕 2) 주1 김의충(金義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고 하여 삼모부인은 경덕왕 즉위 직후 출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條)에 따르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폐해졌으며, 사량부인(沙梁夫人)으로 봉해졌다고 한다. 단, 삼모부인은 『삼국유사』 황룡사종 · 분황사약사 · 봉덕사종조에 754년(경덕왕 13) 황룡사 종(鍾) 주조의 시주자로 등장하고 있어, 출궁 이후에도 상당한 부(富)와 영향력으로 국가적 사업에 관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속일본기(續日本記)』에 따르면, 혜공왕대 집정자였던 김옹(金邕)이 그의 손(孫)이라고 한다.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鍾銘)」에 근거하여 김옹을 경덕왕의 후비(後妃)이자 혜공왕의 어머니인 만월부인(滿月夫人)과 남매 사이로 파악하고, 만월부인의 아버지 김의충이 곧 김순정의 아들이라고 보는 견해와, ‘손(孫)’을 자손의 의미로 해석하여 김옹이 곧 김순정의 아들로서 삼모부인과 남매였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한편, 『삼국유사』 기이편 수로부인(水路夫人)조에 기록된 향가 「 헌화가(獻花歌)」의 배경 이야기에서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였다는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純貞) 공이 김순정과 동일 인물이라고 보기도 한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11년 2월에 이벌찬(伊伐飡)에 임명되었다고 하는 순정(順貞)과는 별개의 인물이다.

주요 활동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왕력에는 경덕왕의 선비 삼모부인의 아버지로 언급될 뿐이나, 일본 사료인 『속일본기(續日本記)』에 두 차례 등장한다. 쇼무텐노〔聖武天皇〕는 726년(성덕왕 25) 7월에 귀국하는 신라 사신에게 김순정에 보낼 새서(璽書)를 내려주었다가 김순정이 전년 6월 30일에 사망하였음을 듣고 슬퍼하며 부의물을 후하게 보냈다.

한편, 774년(혜공왕 10)에 일본에 간 신라 사신 김삼현(金三玄)은 상재(上宰) 김순정 시절에 일본과 우호적 관계가 지속되었음을 언급하며, 당시 집정(執政)하던 김옹(金邕)이 김순정의 손자임을 밝혔다. 김순정 가문은 상재 혹은 상상(上相)의 지위를 이어받으며 신라 정계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친일본적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속일본기(續日本記)』

단행본

이영호, 『신라 중대의 정치와 권력구조』(지식산업사, 2014)
김수태, 『신라중대정치사연구』(일조각, 1996)
이기백, 『신라사상사연구』(일조각, 1986)

논문

이주희, 「신라 김순정가의 대일교역과 등원씨」(『신라문화』47,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16)
강은영, 「779년 신라의 견일본사 파견과 ‘피국 상재’에 관한 검토」(『일본역사연구』 34, 2011)
김선주, 「신라 경덕왕대 삼모부인의 생애와 정치적 의미」(『역사학연구』 44, 2011)
전덕재, 「신라 중대 대일외교의 추이와 진골귀족의 동향 –성덕왕~혜공왕대를 중심으로-」(『한국사론』 35, 서울대 국사학과, 1997)
鈴木靖民, 「金順貞 · 金邕論」(『朝鮮學報』 45, 1967)
주석
주1

신라 때에 둔, 십칠 관등 가운데 첫째 등급. 자색 관복을 입었다. 진골만이 오를 수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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