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불한(舒弗邯) 김의충(金義忠)의 딸이다. 경덕왕의 선비(先妃) 삼모부인(三毛夫人)이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출궁되자, 734년(경덕왕 2) 후비(後妃)가 되어 혜공왕(惠恭王) 건운(乾運)을 낳았다. 『삼국유사』 왕력(王曆)에 따르면, 시호(諡號)가 경수왕후(景垂王后) 또는 경목왕후(景穆王后)라고 한다.
아버지 김의충은 『삼국유사』에 의충(依忠) 각간(角干)으로 표기되었는데, 735년(성덕왕 34)에 하정사(賀正使)로 당나라에 파견된 바 있다. 737년(효성왕 즉위년)에는 아찬(阿飡)의 관등으로 시중(侍中)이 되었고, 739년(효성왕 3)에 사망하였다.
성덕대왕신종명(聖德大王神鍾銘)을 통해서 혜공왕대의 권력자 김옹(金邕)과 만월부인이 남매지간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속일본기(續日本記)』에서 김옹이 경덕왕의 선비 삼모부인의 아버지인 김순정(金順貞)의 손(孫)이라고 하였으므로, 경덕왕의 선비 삼모부인과 후비 만월부인은 고모와 조카 사이가 된다. 이에 대해 같은 김순정 계열이라면 왕비를 교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경덕왕은 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표훈(表訓) 대덕(大德)이 천제(天帝)에게 아들을 간청하게 하였고, 결국 만월부인이 태자 건운을 낳게 되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765년 혜공왕의 즉위 당시 나이가 8세로 어려서 태후(太后)인 만월부인이 섭정하였다. 만월부인의 섭정이 끝나고 혜공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된 시기에 대해서는 왕의 연령이 18세가 되는 775년(혜공왕 11)과 15세가 되는 772년(혜공왕 8), 14세가 되는 771년(혜공왕 7)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