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나(吉那)는 660년(태종무열왕 7) 9월 3일 중국 당나라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泗沘城)에 남아 지킬 때, 태종무열왕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김인태(金仁泰) 및 사찬(沙飡) 일원(日原)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로 왕자를 보좌하였다. 당시 관등은 급찬(級飡)이었다.
이보다 앞서 같은 해 7월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항복하였으나, 아직 백제의 남은 세력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항복한 의자왕과 백제의 왕족 · 신료 · 백성들을 데리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남아서 지키던 유인원은 이후 9월 23일에 사비성에 쳐들어온 백제 잔여 세력과 전투를 벌이는데, 당나라 군대와 더불어 신라 사람들도 나가 싸우게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급찬 길나도 해당 전투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의 행적이나 가계(家系) 등 인적 사항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