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나

  • 역사
  • 인물
  • 삼국
삼국시대 신라 중대의 장수.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급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이재환 (중앙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07월 26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길나는 백제 의자왕이 항복한 뒤 660년 9월 3일 낭장 유인원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의 잔여 세력으로부터 사비성을 지킬 때 왕자 인태 및 사찬 일원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를 통솔하여 보좌한 장수이다. 당시 관등은 급찬이었다.

정의

삼국시대 신라 중대의 장수.

주요 활동

길나(吉那)는 660년(태종무열왕 7) 9월 3일 중국 당나라 낭장(郎將) 유인원(劉仁願)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泗沘城)에 남아 지킬 때, 태종무열왕의 다섯째 아들인 왕자 김인태(金仁泰) 및 사찬(沙飡) 일원(日原)과 함께 7천 명의 군사로 왕자를 보좌하였다. 당시 관등은 급찬(級飡)이었다.

이보다 앞서 같은 해 7월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 항복하였으나, 아직 백제의 남은 세력이 곳곳에서 저항하고 있었다. 당시 중국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항복한 의자왕과 백제의 왕족 · 신료 · 백성들을 데리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남아서 지키던 유인원은 이후 9월 23일에 사비성에 쳐들어온 백제 잔여 세력과 전투를 벌이는데, 당나라 군대와 더불어 신라 사람들도 나가 싸우게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급찬 길나도 해당 전투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의 행적이나 가계(家系) 등 인적 사항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사기(三國史記)』

  • 인터넷 자료

  •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http://db.history.go.kr)

주석

  • 주1

    : 중국 당나라의 장군(592~667). 이름은 열(烈). 정방은 자(字). 현경(顯慶) 5년(660)에 나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백제의 사비성을 함락하고, 의자왕과 태자 융(隆)을 사로잡았다. 661년에는 평양성을 포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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